[독서 에세이] 아멜리 노통브 『두려움과 떨림』

외국인이자 견습사원인 아멜리의 회사 생활 통해
조직 사회 내부 수직적·획일적 서열관계 드러내
개인을 짓밟는 사회는 공포영화와 다를 바 없어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위 사진은 프랑스의 감독 알랭 코르노가 제작한 「두려움과 떨림(Stupeur Et Tremblements)」(2003)의 한 장면이다.
나는 숫자치다. 전화번호, 차 번호, 친구들 생일은 고사하고 자주 사용하는 버튼식 자물쇠 번호조차 까먹어 몇 번이나 바꿨던 전력이 있다. 대학시절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신청했는데 하필이면 재고상품을 조사하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창고 안에서 재고의류를 꺼내 종류별로 상품명과 개수를 적고 전자계산기로 간단한 덧셈과 뺄셈을 해 퇴근하기 전 다른 직원 둘과 맞춰보는 일이었다. 그런데 첫날부터 내 계산만 따로 놀았다. 이런 간단한 계산을, 말도 안돼, 라며 눈에 불을 켜고 전자계산기를 두드렸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다음엔 수상한 눈초리로 다른 둘을 의심했지만 둘은 항상 거의 같은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며칠 후 나를 바라보던 직원들의 시선은 아주 끔찍한 경멸이었다.

여기 똑같은 계산을 천 번이나 했는데도 천 개의 답이 모두 다르게 나오는 여자가 있다. 마음속에 오기를 품고 회사에서 며칠 밤을 새며 손가락이 모두 마비될 때까지 계산기를 두드려보기도 하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을 보며 정신지체장애를 의심하는 상사의 눈초리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상사는 단 20분 만에 그 계산을 해치우니까. 또 그 계산은 복잡한 수학공식을 사용할 필요도 없으며 단순히 전자계산기 하나만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손쉬운 일이라는 걸 여자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여자는 정말 구제불능에 바보 천치일까. 더불어 그럼 나는 답이 없는 걸까.

두려움과 떨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150쪽/7천5백원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두려움과 떨림』은 거대한 조직사회에 맞서는 개인, 그것도 외국인이자 견습사원인 한 여자의 이야기다. 벨기에 여성인 아멜리는 자신이 태어난 일본에서 대기업 유미모토에 계약직으로 입사하지만 입사 첫날부터 골프모임에 초대하는 편지를 쓰거나 오차쿠미(말단직원의 차 대접), 골프클럽 회칙을 복사하는 일만 주어질 뿐이다. 복사기 옆에서 만난 타부서의 부장인 텐시는 벨기에산 저지방 버터에 관한 보고서를 써줄 수 있느냐고 제안하고 그녀는 자신이 할 일이 생긴 것을 기뻐하며 하루 만에 매우 훌륭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러나 다음날 아멜리와 텐시는 부사장 앞에 불려가 서로가 자신의 잘못이라며 무릎을 꿇는다.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이 월권행위라는 것이다. 고자질한 사람은 바로 천사처럼 여겼던 직속상사인 후부키. 이유는 자신이 7년 만에 차지한 자리를 아멜리가 순식간에 차지할 것을 눈뜨고 볼 수 없었기 때문. 유미모토사 백여명의 직원 가운데 여자는 단 다섯명, 그 중에서도 유일하게 간부의 지위에 오른 여성은 후부키뿐이었다.

아멜리의 직장생활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간다. 후부키는 숫자개념이 부족한 아멜리에게 계산서를 잔뜩 던져주고 아멜리는 결국 자신이 문맹(文盲)보다 지독한 산수맹(算數盲)임을 깨닫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부사장에게 야단을 맞은 후부키를 화장실까지 따라가 위로의 말을 건넨다는 것이 그만 그녀의 우는 모습을 목도하는 죄악(?)을 저지르고 만다. 입사 육개월만에 아멜리는 화장실 관리라는 직책을 맡게 되지만 자신도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체면을 잃지 않고자 1년의 계약기간을 채운다.

유미모토사에서 개인의 능력은 함부로 발휘될 수 없다. 누군가 일을 맡길 때까지 결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해선 안 된다. 아멜리는 미스 모리의 지시를, 미스 모리는 미스터 사이토의 지시를, 미스터 사이토는 미스터 오모치의 지시를, 미스터 오모치는 미스터 하네다의 지시를 통해야만 그녀의 능력은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수직적이고 획일화된 서열관계, 한 개인을 평범한 사원에서 화장실 청소담당자의 위치로까지 끌어내리는 거대하고 위압적인 힘은 비단 일본의 기업에만 국한되는 것일까. 이 책 속에는 한 개인과 전체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종종 그런 경험에 직면하곤 한다. 아주 사소하고 본성적인 것에서 출발하는 문제들. 아멜리와 같이 여자이며 외국인이며 견습사원이라는 것, 계산능력이 부족하다는 것 외에도. 사소한 예로 비염 환자인 나는 요즘 전철을 타는 것이 몹시 괴롭다. 환절기에 더 심해지는 비염 때문에 기침을 하면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와 화살처럼 꽂힌다. 시선을 한 몸에 받던 나는 허둥대며 다른 칸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신종플루의 출현은 다시 나로 하여금 그 경멸의 순간을 살짝 맛보게 한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나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경우 개인의 적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곳곳은 개개인이 짓밟고 밟힌 상처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순식간에 공포영화의 배경이 되고 마는.

‘어떤 존재든 프라이멀 트로마티즘(Primal traumatism)을 겪는 순간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경험이 삶을 체험 전과 체험 후로 나눠 놓게 된다. 그리고 아주 순간적으로나마 이때의 경험을 떠올리면 사람들은 비이성적이고 동물적이며 치유 불가능한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책을 읽으며 심하게 몰입한 것은 아마도 아멜리가 지독한 산수맹이었기 때문이고 그 산수맹이 겪었을 경멸의 순간을 내가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영화화된 「두려움과 떨림」을 보았을 때 아멜리가 영수증을 계산하기 위해 회사에서 아예 밤을 새며 미친 듯이 계산기를 두드리던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부스스 산발한 머리로, 잠도 못 자서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눈으로, 아침이 왔는데도 계산기를 두드리던 그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어떻게 천 번이나 계산을 했는데도 답이 제각각이란 말이냐. 물론 나도 모른다. 끝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답을 들려주는 대신 이런 말을 건넬 수는 있다.

세상이 당신의 그 형편없는 계산실력을 비웃고 경멸할지라도 나는 안다. 당신이 얼마나 그 문제를 풀고 싶었는지 안다. 하지만 세상에 그 문제를 풀 수 없는 사람이 한명 정도 더 있다는 것을 안다면, 당신, 조금 덜 외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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