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하게 말하자면, 대학원생의 생활은 오직 '논문'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다. 아무리 자상하고 따뜻한 대학원생이라도 그의 논문이 형편없다면, 그는 별 볼 일없는 대학원생이다. 아무리 사악한 동물이라도 훌륭한 논문을 쓴다면, 그 동물은 우수한 대학원생이다. 이 점을 착각하면 모든 것이 헛일이다. 사악한 동물 운운함에는 다소 어폐가 있겠으나, 논문이 대학원 생활의 제1항임에는 변함이 없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사실을, 나도 대학원생이 되면서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논문을 잘 쓰나 하는 것은 누구도 알려준 적이 없어서,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논문 잘 쓰는 방법』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저명한 소설가이자 볼로냐 대학의 기호학과 교수인 움베르트 에코의 이 책이 출간된 뒤, 이탈리아 대학생들의 학위논문 통과율이 현저하게 높아졌다고 한다. 어수룩한 나에게 이 책이 경전처럼 보였음은 물론이고, 그 즉시 이 책을 샀던 것도 당연하며, 그러나 아직까지 읽지 않았음도 누구나 예상한 결과이다. 학위논문을 써야하는 시기가 코앞에 닥친 지금에야, 나는 『논문 잘 쓰는 방법』을 읽게 되었다.


논문을 쓰는 자여, 컨베이어 벨트 앞의 숙련공이 될지어다.


이 책이 내게 가르쳐준 것을 요약하면 이렇다. 논문이란 '탐험'이며, 이 탐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논문을 구체적인 "작업"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 작업이라 함은 작업의 순서와 그 분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 계획을 실행시키는데 있어 마치 컨베이어 벨트 앞에 앉아 있는 숙련공처럼 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이 책이 하나마나한 추상적인 경구들로 가득 차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움베르트 에코는 자신의 경험과 자신이 지도한 제자들의 경험을 들이대면서, 구체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다음의 인용문들을 보라.

"하지만 종종 복사는 하나의 알리바이로 이용되기도 한다. 수백 페이지의 복사물들을 집에 가져 와서는, 그 복사된 책에 대한 간단한 수작업만으로 그 책을 소유하였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복사물의 소유는 책읽기를 방해한다. … 그것은 일종의 수집 현기증이며, 정보의 신자본주의다. 복사물에서 자신을 지키도록 하라."(188면)

"이 책이 전반적으로 여러분에게 가르친 것은 여러분은 테마의 선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 가능하다면 아주 쉽고, 가능하다면 범위가 좁은, 극도로 제한된 테마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선택한 테마, 가령 [피사카네 거리와 구스타보 모데나 거리의 모퉁이에 있는 신문 판매대에서 1976년 8월 24일부터 28일까지 팔린 신문들의 변화]라는 테마에 대해서는, 여러분은 최고의 권위자가 되어야 한다."(262면)

논문을 쓰느라 지금 『대학신문』도 펼쳐볼 시간이 없는, 나도 모르는 나의 동료들이야말로 이 인용문에 크게 끄덕거리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런데 또 내가 아는 나의 동료들이야말로 남의 책이나 옮겨놓지 말고 너나 잘하라고 하실테지. 아차, 이럴 시간이 없다. 나도 어서 어떤 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되기 위해 책들 속으로 들어가야 할 참이다.

권희철(인문대 석사과정·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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