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신 교수
물리·천문학부
얼마 전 필자가 강의하는 과목 수강생으로부터 수업내용에 대한 질문 이메일을 받았다. 종종 그러한 이메일들을 받곤 하는데 필자는 그것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고 답하는 편이다. 그런 메일들을 통해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열의를 느끼기도 하고, 또 강의한 내용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도를 가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메일에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글쓴이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아서 누가 보낸 메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누구냐고 물으면 묵묵부답이다. 돌이켜 보면 이러한 종류의 이메일을 받는 일이 적지 않게 있었던 것 같다. 이메일 아이디에 이름을 짐작할 흔적이 남아 있다면 다행이지만, 이런 식의 이메일을 보내는 글쓴이의 아이디는 보통 ‘원령공주9’, ‘SNU_man’, ‘-O-’이니 하는 식으로 난해하다. 심지어 어떤 이메일에서는 시험점수가 이상한 것 같으니 답안을 다시 검토해달라고 부탁을 하면서도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아 어떻게 도움을 줄지 전전긍긍한 경우도 있었다.

말 그대로 ‘우리 때는 상상도 못했던’(필자기준으로 약 20년 전을 뜻한다) 이런 일들은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문자 통신의 발달에 따른 부작용이 아닌가 싶다. 인터넷의 발달은 강의실이 아닌 또 다른 소통의 장을 제공하고, 기존의 방식으로는 전하기 어려운 내용을 매우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압축된 내용을 신속하게 보내는 것이 지상과제다 보니 편지 형식 글의 서두에 당연히 들어가야 할 “아무개에게” 또는 “아무개께” 라는 글과 말미에 으레 붙이는 “누구누구 드림”이라는 거추장스러운 글들이 잘려나가고 자연스럽게 익명의 글이 만들어진다. 압축된 글을 많이 쓰다 보면 글의 스타일도 달라진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의 보급으로 글을 쓰는 기회가 옛날보다 훨씬 많아졌는데도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이 옛날보다 많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접한다. 논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게 엮어가기보다는 공문서에 나오는 개조식 문장처럼 단편적인 내용의 합인 것 같은 글들이 자주 보인다(공문서와 문자 메시지는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다).

글을 쓰는 내용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한 소통은 사람과의 관계도 바꾼다. 여러모로 편리한 점이 있어 이메일을 지도학생들의 연구 진행 상황에 대한 보고와 그에 대한 피드백 과정에 많이 사용하다 보면 학생들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지기도 한다. 정도가 심해지면 마치 가상공간에 있는 ‘가상학생(Virtual Student)’을 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직접 대면하고 활발한 토론과 의견교환을 하는 것이 새로운 영감을 얻고 더 능률적인 연구가 이뤄지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학술대회라는 것을 굳이 열어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대학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무명학생을 가르치는 것과 같은 무미건조한 지식전달의 장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오프라인과 온라인 소통을 잘 조화롭게 사용하는 것은 물론, 교육하는 자와 교육받는 자 모두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이다. 오늘도 수업시작 전 출석을 불러 학생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가상학생이 아니라는 점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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