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노벨문학상 특별 기고

독일어 사용하는 루마니아 소수 민족 출신 작가
정치 탄압 속, 침묵하지 않고 냉철한 언어로 발언
치밀한 묘사와 생생한 체험, 거리 두는 문체 두드러져

최윤영 교수
독어독문학과
헤르타 뮐러(사진)가 2009년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경탄과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 루마니아에서 온 조그마한 독일 작가는 한국의 독어독문학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독일에서도 수상을 예상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응축된 시적 언어와 뛰어난 작품성은 일찍 인정받았지만 특이한 출신배경과 반복되는 소설의 내용(루마니아 전체주의의 압제에 대한 고발), 그리고 지난 10년간 이미 2명의 독어권 작가(독일의 귄터 그라스 1999년, 오스트리아의 엘프리데 엘리넥 2004년)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상황에서 큰 기대를 모으지 못했기 때문이다. 헤르타 뮐러는 노벨문학상을 탄 12번째 여성작가이며 클라이스트상을 위시한 다수의 주요 문학상을 받은 작가다.   

올해 56세인 헤르타 뮐러는 루마니아의 바나트-슈바벤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독일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에 속한다. 이러한 출신배경과 가족사는 오랫동안 뮐러 작품의 주요 내용을 특징짓는다. 할아버지는 유복한 농부이자 상인이었는데 루마니아 공산주의 정권하에서 재산을 몰수당했다. 어머니는 열여섯 살 때 소련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고 아버지는 전직 나치출신으로 트럭 운전사였다.뮐러는 시골 마을에서의 행복한 유년시절이 아니라 쇠락해가는 작은 마을에서의 폐쇄적이며 억압적이고 두려움에 가득 차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뮐러는 루마니아의 한 대학에서 독문학과 루마니아문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기계공장에서 통역 일을 했다. 1979년 스파이로 일하라는 루마니아 비밀경찰의 제의를 거부하면서 뮐러의 인생은 궤도에서 벗어난 험난한 길로 바뀌었다. 비밀경찰의 잦은 소환과 가택수색, 그리고 주변세계에서 받은 기생충 같은 인간이라는 모욕 속에서 뮐러는 독일어 개인교습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당시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정권에 대한 반감을 키워가던 작가는 자기 확신을 얻기 위해 첫 작품집 『저지대(Nieder-ungen)』를 루마니아에서 출판했다. 이 작품은 작가 나름의 그때까지의 삶에 대한 정리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제까지의 나의 삶을 철두철미하게 빗어 훑어 내렸다. 작은 마을에서의 유년 시절, 아버지의 나치 경력, 독일 소수민족의 나치 범죄에의 연루, 지금 내가 겪는 독재의 전횡을 말이다.”

1987년 뮐러는 작가인 남편 리하르트 바그너와 함께 베를린으로 이주했고 이후 작가로 유럽 문단에서 주목받게 됐다. 작가에게 독일이라는 공간은 언제든지 소환돼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줬지만 한편으로는 자기가 태어난 바나트 지방의 독일어와는 완전히 다른 독일어를 사용하고 다른 세계관과 인생체험을 가지는 사람들의 땅으로 여전히 그를 이방인으로, 고향 없는 작가로 만들었다.

작가의 경력을 볼 때 큰 전환점이 된 것은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정권 치하에서의 자전적 삶의 기록을 많이 담은 장편소설 『마음 속의 동물(Herztier)』의 출간이었다. 이 작품은 대학으로 진학한 여주인공이 일상 삶에서 겪은 정치적 탄압을 묘사했다. 같은 기숙사 방의 친구인 롤라는 자신의 운명인 시골을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여러 남자를 만나다 체육선생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자살한다. 롤라의 기록을 읽은 주인공은 뜻이 맞는 대학생 그레고르, 쿠르트, 에드가와 이 사건을 이야기하게 된다. 이들은 모여 반정부 시를 짓고 자신들이 받는 일상의 정치 억압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결국 비밀경찰에게 이 일이 알려져 거의 모두가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된다.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헤르타 뮐러 글의 전체적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바로 완결되지 않은 단편적 구조, 에피소드식 이야기, 그리고 많은 신조어다. 폐쇄적 전체주의 체제하에서 겪은 정치적 탄압과 두려움, 공포 속에서도 작가는 침묵하지 않고 용기를 내 발언하고 있지만 그의 언어는 노골적인 반정치 문학이나 구호문학이 되기보다는 일상 삶 안에서 냉철하고 조용하고 뚜렷한 이미지 언어로 전달된다. 『마음 속의 동물』은 “우리가 침묵하면 속이 편치 않고 우리가 말을 하면 우리는 조롱거리가 된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이는 작가의 위치를 잘 드러내 준다.

올해 출간돼 많은 찬사를 받은 장편소설 『숨 그네(Atemschaukel)』는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사건, 즉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바로 나치의 후예로서 소련으로 압송된, 7만5천명의 루마니아-독일인들의 운명을 다루고 있다. 독일군에게 피해를 당한 소련을 복구한다는 명목으로 17세부터 45세까지의 루마니아 거주 독일인들이 끌려간 이 사건에 대한 언급은 오랫동안 터부시 돼왔다. 독일인이 가해자가 아니라 소수민족으로서 희생자로 산 삶을 주인공의 내부자 시각에서 그려낸 이 장편소설은 그 치밀한 묘사와 생생한 체험, 집중적인 시적 이미지, 그리고 거리를 두는 문체가 두드러지는데 작가로 하여금 노벨상을 받게 한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작가의 어머니가 실제로 겪은 사건이며 동시에 일찍 사망한 동료 시인 파스티오르의 고통스러운 회상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소련으로 압송된 수용소에서 사람들은 처음에는 개개인의 인생사를 가지고 있지만 수용소를 지배하는 극심한 굶주림과 억압 하에서 힘에 겨운 강제노역을 하면서 한명 한명 동물이 돼간다. 개인들의 회상 속에서 역사를 녹여내는 뮐러의 작품들은 종종 유사한 경험을 담아낸 솔제니친, 임레 케르테스, 프리모 레비와 비교되기도 한다. 

작가는 유럽, 독일, 그리고 현대 물질세계의 안락함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리가 잊고 있는, 같은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기억을 초지일관 기술한다. 거추장스러운 수사 없이, 강한 시적 이미지를 전달하는 산문 언어로 쓰인 그의 작품은 몰락해간 동유럽 소수민족의 역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너무 늦은 과거”와 “너무 이른 미래”에 사는, 아직도 다수로 존재하는 ‘벌거벗은’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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