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2000년대 문학계를 결산하다 - 2. 2000년대 뉴웨이브의 등장

2000년대 난해한 시, 자유분방한 소설의 등장
문제의식 없고 독자와의 소통 거부하는 듯 보이지만
역사적·정치적 그늘에서 벗어나 한국

친숙하게 감성을 자극하는 1990년대 서정시에 익숙하던 독자들은 2000년대 등장한 ‘새롭지만 고약한’ 시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낯설다’ ‘어렵다’ ‘서정시인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시보다 ‘고약함’은 덜했지만 소설 역시 변화의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젊은 문인들은 새로운 감수성과 기발한 상상력, 저마다 독특한 문체를 무기로 문제작들을 쏟아냈다. 이른바 1980년대 사실주의 문학에서 엿보이던 역사와 사회에 대한 고민도, 1990년대 문학의 서정성도 흐릿해진 시와 소설들이 한국문학사에 새로운 획을 긋기 시작한 것이다.

◇‘확’ 젊어진 시 세계와 끝없는 논쟁

 

시인 황병승

 

2005년은 ‘젊은’ 시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 기념비적인 해다. 1970년대 태생의 김민정, 김언, 황병승 등의 젊은 시인들이 그해 대거 시집을 낸 것이다. 이들 가운데 김언을 제외한 시인들은 모두 첫 시집을 냈다. 한국 문단에 더욱 ‘충격’을 준 것은 그 작품들의 내용과 형식이었다. ‘흰색-검은색-초록으로 가는 은밀한 순서 울게 만드는 것을 나는 증명할 것이다’ (황병승, 「원볼낫싱」). 황병승의 첫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에 수록된 시들은 난해하고 낯선 표현으로 독자들을 첫 줄에서부터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또 김민정의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에서는 성냥팔이 소녀가 아닌 눈알팔이 소년이 눈알을 팔러 다니는, 그야말로 두 눈이 번쩍 뜨이는 기괴한 시적 상황이 숱하게 연출된다.

 

시인 김언

 

1차 독해조차 어려운 표현과 문체를 통해, 현실에 대한 깊은 고민이나 애틋한 서정이 아닌 화자의 두서없는 독백 같은 시를 쏟아내는 젊은 시인들. 문학평론가 권혁웅씨는 “이들의 작품이 가까운 미래에 우리 시의 분명한 대안이라는 것을 인정할 날이 올 것”이라며 ‘전위적인 시’로 도전하는 젊은 시인들을 ‘미래파’라 칭했다. 그러나 곧이어 이들 작품의 시적 가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미래파 논쟁’이 불붙었다. 파격적 시 내용과 형식에도 비교적 열린 입장을 취했던 신진 평론가와 달리 기성 평론가 상당수가 혹평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 의식도 없으면서 독자와의 소통마저 포기했다’, ‘시가 아니라 헛소리’와 같은 평은 ‘독자’를 전제해야 존재의미가 있는 문학에는 가혹한 것이었다.

 

시인 김민정

 

한편 당사자인 젊은 시인들은 ‘미래파’ 등과 같은 범주 자체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자신들의 시가 1990년대의 그것과 구분된다는 지적에는 동의했지만 개성적 시인들과 변화무쌍한 시적 흐름을 ‘미래파’라는 하나의 틀에 가두려 한다며 반발한 것이다. ‘미래파’ 등과 같은 범주화 시도의 배경에 관해 올해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김언씨는 “2005년 시집들이 대거 발간된 것은 문예진흥위원회의 지원 사업 때문이었다”며 “갑작스레 새로운 시들을 접한 비평가들이 각 시의 깊은 해석을 미루고 급하게 ‘난해한 시’로 ‘뭉뚱그린’ 것이 범주화를 부추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상상 위에 펼쳐지는 세계, 엉뚱하게 혹은 섬뜩하게

 

소설가 박민규

 

파격적 내용과 형식으로 단번에 한국 문단에 파장을 일으킨 시에 비하면 소설의 도전은 비교적 ‘잠잠하게’ 그리고 천천히 이뤄졌다. 이들 소설이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 뿌리내린 신자유주의와 새로운 계층 구조, 빈부 격차 등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1980년대 이후 사실주의 문학을 완전히 전복시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은 시보다 상대적으로 현실 인식과 독자와의 소통을 중시하는 장르이기에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유지하면서도 내용과 형식은 훨씬 유연해졌다. 즉 이전에 없었던 공간, 감각, 표현 등을 작가 각자가 창조하며 이전에 주를 이뤘던 ‘식상한 현실적 배경, 상황, 인물’을 파괴했다. 문학평론가 손정수씨는 “소설이 곧 현실의 ‘재현’이라 여겼던 예전과 달리 2000년대 이후 소설은 작가 개인의 눈과 사고의 틀에 포착된 주관적 세계를 상상으로 펼쳐내는 ‘상징적 상상’의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소설가 이기호

 

2005년 발간된 박민규의 첫 단편집 『카스테라』는 현실 속 상상의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냉장고 안에 상한 사회와 세상을, 혹은 상하지 않았으면 하는 소중한 것들, 즉 부모님, 학교, 정치가 따위를 넣어 카스테라로 만든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이 현실화된다. 이 외에도 이기호는 『최순덕 성령충만기』에서 성경 2단 편집 형식을 빌리거나 랩의 리듬을 살린 개성 있는 문체를 선보였다. 황정은의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의 「모자」에서는 자본주의 시대 무력한 중년가정인 아버지가 ‘자주 모자가 되었다.’

소설가 천운영
기묘한 상상에 엉뚱한 유머 대신 섬뜩함을 가미한 방식으로 현실을 숨겨놓은 천운영과 백가흠 등도 있다. 백가흠의 『귀뚜라미가 온다』의 「밤의 조건」에는 생계수단으로 부인의 포주 노릇을 하는 남편과 이를 수용하는 부인이, 「구두」에는 자신의 가족을 잔인하게 죽이고 처음 본 여자의 집에서 자살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이러한 소설의 새 경향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시선도 있다. 현실을 반영하더라도 문제 해결 의식이나 발전적 미래상은 찾아볼 수 없고, 현실 앞에 무력하고 체념한 자아들만 보인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하지만 손정수씨는 “역사적・정치적 사고가 과거 소설에서는 ‘대놓고’ 드러났다면 2000년대 소설에서는 새로운 언어와 감각을 덧입혔을 뿐이지, 그러한 사고가 누락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기성세대와 달리 유신체제, 민주화 운동 같은 역사적・정치적 그늘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 문인들은 현실 문제를 인지하더라도 1980년대보다 훨씬 가볍고 저마다의 색다른 방식으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전위’는 본래 주류를 좇지 않는다

젊은 문인들은 무거운 정치적 그늘이 기성세대보다 뚜렷하지 않았기에 상상력에 기반을 둔 자유로운 소재와 형식을 꿈꿀 수 있었다. 다만 기성세대, 기성평론의 눈높이에서 볼 때 이러한 전위적 시와 소설의 성격은 ‘괴상’했고 실제로 독자 일부는 신선하게 받아들였지만 다른 일부는 거부감을 가졌다. 하지만 문학평론가 이광호씨는 “이들이 과거 문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서정성을 담고 현실에 참여하고 독자와 소통한다는 것이지 이런 특성 모두를 포기한 것은 아님”을 강조한다. 그래서 2000년대 이후 문학은 김언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수 독자와의 ‘은밀한 소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애초부터 ‘주류’가 되기를 꿈꾸지 않으며, 새롭고 도전적안 내용과 형식으로 한국 문단을 풍성하고 이채롭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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