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의 제약 없는 U-health 시대

지능형 의료기기의 발달로
일상 생활 방해받지 않고도
건강 상태 진단·치료 가능해

심장 질환을 앓는 A씨. 그의 심전도와 맥박은 언제 어디서나 측정된다. 특수 소재로 된 침대시트와 바이오 셔츠는 자나깨나 그의 심전도와 맥박을 감지해 무선송신장치로 전달한다. 이상 증후가 나타나면 이는 바로 담당의사에게 보고되고 담당의사는 즉시 조치를 취한다.

전남 신안군의 한 섬에 혼자 거주하는 B 할머니. 할머니가 사는 섬엔 병원이 없지만 할머니의 당뇨병은 24시간 관리된다. 할머니가 팔목에 찬 혈당관리 팔찌는 간호사의 채혈 없이도 온종일 혈당량을 감지하며 적절한 인슐린 복용량을 알려준다.

먼 미래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러한 기술들은 현재 개발 중이거나 이미 개발이 완료됐다. 건국대병원과 한 IT업체는 심전도 측정 장치를 휴대전화에 연결해 의사에게 환자의 심전도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는 의복형 생체신호 모니터링 시스템, 즉 바이오 셔츠를 개발해 지난 2006년부터 시범적용 중이다. 무채혈 혈당 측정기 역시 활발하게 연구・개발되고 있다. 인체의 건강관련 정보를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Ubiquitous) 수집・처리・전달・관리하는, 이른바 U-Health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기존의 의학이 IT(정보기술), BT(생명기술), NT(나노기술)를 만나면서 병원에 가지 않고도 원격지에서 첨단 의료 서비스가 24시간 이뤄지는 의료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U-Health 시대를 열 ‘지능형 의료기기’

바이오 셔츠: 셔츠의 특수 소재인 전도성 섬유가 심박수, 호흡수, 체온, 운동량 등 생체정보를 측정하고 이를 셔츠에 부착된 무선송신기를 통해 분석장치로 전송한다.
U-Health 시스템은 크게 의료서비스 제공자와 수혜자, 이들을 연결하는 통신 네트워크, 그리고 지능형 의료기기 등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통신 네트워크는 초고속 유・무선통신의 발달로 이미 U-Health의 구현을 선도할 수준을 갖췄다. 제공자는 병원 업무에 큰 지장 없이 추가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며 수익을 올린다. 수혜자는 병원 이용에 드는 의료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지능형 의료기기로 양질의 서비스를 편리하게 받아 제공자와 수혜자의 이해관계는 큰 틀에서 일치한다. 따라서 U-Health 시대를 현실화하는 관건은 지능형 의료기기의 개발이다. 김희찬 교수(의학과)는 “제공자와 수혜자 사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고 통신 네트워크가 마련되더라도 원격 진단・치료에 필요한 지능형 의료기기가 개발돼야 U-Health 시대가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지능형 의료기기의 기본 기능은 증상의 감지, 모니터링, 분석 등이지만 치료까지 추가로 수행하기도 한다. 감지는 센서가 인체에서 발생하는 물리적・화학적 현상의 변화를 측정하는 단계다. 센서의 전기 신호는 이를 필터링하고 시각화하는 모니터링 과정과 축적된 생체신호를 분석하는 과정을 거쳐 U-Health 시스템 관리자에게 전송된다. 생체정보 처리의 최초 단계를 수행하는 센서는 수집하는 생체 정보에 따라 크게 물리 센서와 생화학 센서로 나뉜다. 물리 센서는 이미 상당한 기술 수준을 확보했다. 반도체 압력 센서나 가속도 센서는 개발이 완료돼 시중에서 구할 수 있으며 이들은 손목형 혈압측정기나 운동량 분석기에 이용된다. 혈압, 심전도, 체온, 체중 등 여러 항목을 동시에 측정하는 통합형 의료기기도 출시됐다.

바이오칩: 작은 칩 안에 마이크로미터(μm) 크기의 수많은 모세관들이 배열돼있다. 극미량의 생체시료는  이 모세관을 따라 흐르면서 환자의 건강상태를 알려줄 수 있는 많은 시험 반응을 거친다.
물리 센서를 기반으로 한 지능형 의료기기는 최근 ‘무자각적 측정’을 향한 진화를 준비 중이다. 박광석 교수(의학과)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전혀 방해하지 않고 무의식중에도 건강상태를 측정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U-Health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박광석 교수팀은 침대, 변좌, 의자 등에 센서를 장착해 여러 생체신호를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수집하는 방안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한편 이미 상용화 단계에 접어든 물리 센서와 달리 생화학 센서는 아직 초기 개발 단계에 머물고 있다. 김희찬 교수는 “시장규모가 큰 혈당 센서를 제외하곤 상용화된 기술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환자의 전반적 건강상태는 물리 센서를 통해 측정할 수 있지만 구체적 상태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혈액과 같은 생체 시료의 분석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생화학 센서의 개발은 병원 밖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려는 U-Health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기술적 난관이라 할 수 있다.

BioMEMS(Micro ElectroMechanical Systems)는 이 난관을 극복할 방안으로 주목받는 NT 분야의 첨단 기술이다. BioMEMS는 반도체를 생산하는 공법을 의생명과학 분야에 적용해 만들어진 초소형 정밀기계를 말한다. 최근 이 분야에서는 극미량의 유체(流體)를 다루는 미세유체공학(Microfluidics)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권성훈 교수(전기공학과)는 “미세유체공학을 이용하면 아주 작은 바늘로 찔러 통증 없이 채취한 극소량의 생체 시료를 작은 칩 안에서 마이크로미터(μm) 크기의 모세관으로 흘려 환자의 건강 상태를 분석할 수천 가지의 다양한 시험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병원과 실험실에서 상당한 전문인력과 시간이 투입되는 분석과정을 이렇게 작은 칩 안에서 자동화하는 기술은 U-Health 시대를 앞당긴다. Bio-MEMS 기술은 이밖에도 초소형 수술 기구, 인공장기, 약물전달장치를 제작하는 데도 활발히 응용되고 있다.

U-Health의 치명적 결점 보완할 정보보안 기술

의자센서: 심전도 측정 센서가 달린 이 의자에 앉으면 옷을 입고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심전도가 자연스럽게 측정된다.
지능형 의료기기 개발이 잘 진행되면 장밋빛 U-Health 시대가 열랄까. U-Health의 도입은 무엇보다 정보보안과 사생활 보호에 대한 심각한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U-Health 시스템에서는 건강정보라는 매우 민감한 사생활 정보가 저장・처리・전달돼 정보보안이 확실히 뒷받침되지 않으면 엄청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자통신 김신효 연구원은 “개인 건강정보가 온라인으로 접근 가능하기 때문에 보안 위험이 가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보안 기술이 현재 연구・검토되고 있다.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방법으로는 익명화 기술과 P3P(Platform for Privacy Prefe-rences Project)가 논의된다. 익명화 기술은 암호화 과정을 통해 개인 정보로부터 어떤 개인을 식별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P3P는 사용자 PC에 설치된 도우미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사용자의 개인정보 보호정책과 서비스 제공 업체의 개인정보 사용정책을 비교해 약관 동의 여부 등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P3P는 이용하는 서비스 종류에 따라 개인 정보 노출 수준도 조절하며 자신의 정보를 서비스 제공자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지를 모니터링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환자에 대한 전자 기록의 안전한 교환과 공유에 관한 기술도 연구・개발 중이다. 의료정보 표준화 실현을 위한 촉진기구인 IHE(Int-egration of Healthcare Enterprise)를 중심으로 의료 기관 간에 환자 정보를 유출 위험 없이 안전하게 접근・활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모델이 개발되고 있다. 여기에는 정보에 대한 접근 통제, 보안 감사 방법 등의 보안 기술이 포함돼 있다. U-Health 시스템의 위험성을 평가하는 표준도 제정할 예정이다. 국제표준화기구(ISO)는 시스템의 위험 평가 결과에 따라 시스템 접근 권한을 관리하고 발생 가능한 사고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보안 관리 기술을 활발히 개발하고 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