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심포지엄] 세계화 시대의 중국 및 동아시아 음식 문화

음식을 통해 읽어본 세계화, 지역 정체성을 확인할 수도
‘음식 방언’ 개념 통해 지역 경제 발전 상 설명

영양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한식. 낮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맛과 영양 개선에 주력하는 정부와 달리 음식의 세계화를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학술대회가 열려 눈길을 끈다. 지난 12일(월)부터 3일간 호암교수회관에서 ‘세계화 시대의 중국 및 동아시아 음식 문화’를 주제로 열린 비교문화연구소 주최 학술대회가 그것이다.

음식 문화는 생래적으로 타 문화와의 교류와 융합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음식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선 다른 문화권과의 비교가 필수적이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개별 문화권의 음식을 심도있게 연구하는 동시에 세계화 담론을 읽어내는 자리가 마련됐다. 비교문화연구소 황익주 소장은 “문화는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비교해야 정확하게 분석된다”며 “이번 학술대회는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미흡했던 음식의 비교문화연구 발전을 위해 개최됐다”고 학술대회의 의의를 밝혔다.

1년의 준비과정을 거친 대회는 조직위원장 김광억 교수(인류학과)의 노력의 산물이다. 6년 전부터 ‘음식의 인류학’ 강의를 맡은 그는 “음식은 문화다”며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식품영양학적 영역에만 집중하는 현실을 비판해왔다. 음식 문화에 관한 담론이 외국보다 빈약한 한국에서 올해 학술대회를 개최하게 된 데는 김 교수의 역할이 컸다.

박상미 교수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대회에서는 음식의 세계화가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작용하면서 새로운 지역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이 설명됐다. 박상미 교수(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는 최근 한국에서 성장하고 있는 외국 음식 산업에 주목해 지역 음식이 현지인과 타지인 모두의 정체성 형성에 기여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외국 음식점이 국내 외국인에겐 모국의 음식 문화를 통해 정체성을 확인케 하고 한국인에게는 외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수단이 돼 ‘글로벌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설명이다.

한경구 교수(자유전공학부)는 “중국 원산의 라면이 한국화돼 특유의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생산・소비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생일날 라면을 먹는 일이 그리 이상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국가 주도의 밀가루 음식 소비 장려 정책으로 라면이 값싼 서민 음식으로 자리잡아 본고장인 중국과는 전혀 다른 위상을 가진다는 것이다.

음식의 세계화가 특정 집단에 보상심리를 제공한다는 분석도 있었다. 정유선 교수(하버드대 인류학과)는 불가리아 소피아시에서 중국 식당이 수행한 기능을 예로 들어 “사회주의 붕괴 후 중국 음식을 접한 불가리아인들이 중국 음식 특유의 풍성함을 통해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정상적 삶을 맛보고 정치・사회적 지위 상승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 음식이 불가리아인들에게 역설적이게도 ‘서구적’이라고 인식된 배경을 설명해준다.

히노 미도리 교수
일본 긴조 가쿠인대
국제사회학과
히노 미도리 교수(일본 긴조 가쿠인대 국제사회학과)는 ‘음식 방언’ 개념을 통해 지역 정체성을 설명했다. ‘음식 방언’은 언어에 지역마다 방언이 존재하듯 같은 음식도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개념이다. 일본 튀김의 일종인 덴푸라는 소스의 사용 여부에서 지역차가 나타나고 고기만두는 이름과 재료에서 관동 지방과 관서 지방 간 차이가 나타난다. 또 음식 방언은 지방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다. 사람들은 특색화된 지방 음식으로 다른 지역과 교류・경쟁하며 지역 정체감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아사쿠라 토시오 교수(일본 국립민족박물관 연구부)는 “이같은 대회를 통해 향후 동아시아에도 유럽처럼 통합적 학회가 탄생하길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형진씨(인류학과 석사과정)는 “세계화를 참신한 관점에서 본 정유선 교수의 발표가 인상적이었다”며 “음식의 세계화 연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계화 개념의 정교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정 음식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맛과 영양학적 우수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문화가 전파돼 관심과 동경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식의 세계화는 한국 문화의 세계화가 선행돼야 가능하다. 한식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제공할 비교문화 연구는 슬슬 발동이 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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