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문화정책진단 - 1.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되는 문화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는 지난 6월 17일(금) ‘2010년도 예술지원 정책 개편방향’을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8월 발표된 ‘새정부 주요 예술정책’을 구체화한 것으로, 선택과 집중, 간접지원, 사후지원, 생활 속의 예술 향유 환경 조성 등 이명박정부의 예술지원 원칙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이는 문화예술 표현의 자율성 침해, 문화의 다양성 저해, 노골적인 ‘우향우’ 코드인사 정책 등으로 많은 논란을 빚었다. 『대학신문』은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되는 문화, 정치색으로 인한 문화 민주주의의 파괴, 보여주기 급급한 이벤트성 문화 등으로 대표되는 이명박정부의 문화정책을 총 4회에 걸쳐 진단하고 이를 통해  문화정책의 현주소를 살펴 본다.



지난해 9월 문체부는 문화예술진흥기금 지원발표에서 올해부터 장편 서사문학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문학계에 지원되는 예산의 절반이 장편소설에 배정되는 반면 단편소설과 희곡, 수필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단편소설 중심의 지원정책을 지양하고, 장편소설 창작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으나 정작 장편소설 지원 대상 공모에는 수준미달의 작품이 응모돼 준비 안 된 정책의 초라한 결말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경호 문학 평론가는 “정부의 방침은 최근 대중들의 기호가 단편에서 장편으로 넘어가자 장편소설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상업적 이익을 창출하겠다는 것으로 일리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최근 침체된 문학 풍토 속에 무턱대고 단편소설 지원을 폐지하고 한국 문학의 미래를 장편소설에만 맡기는 것은 문학 장르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일”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박철화 교수(중앙대 문예창작과)는 “장편, 단편 등 각 분야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상업적 가치를 근거로 이뤄지는 것을 지양하고 상대적으로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제는 양보다는 질적으로 우수한 콘텐츠를 발굴할 수 있도록 작가층 확보에도 힘써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음악계에서는 문체부가 ‘국가차원의 그래미상을 만들기 위한 예산 배정 때문에 민간 시상식에 지원할 예산이 없다’고 밝히면서 그간 ‘한국판 그래미상’으로 여겨지던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이 취소됐다.

2006년 이래 꾸준히 이뤄지던 정부의 예산지원이 올해 갑자기 중단돼 대중음악상은 운영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대해 음악 관계자들은 정부의 결정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이동연 공동소장은 “대중적 인기도나 방송출연 회수에 관계없이 오로지 음반의 창작성과 음악성만을 기준으로 시상하는 한국대중음악상은 기존의 주류 음악을 중심으로 했던 가요시상식과는 다른 의미가 있는 시상식”이라며 “상업적인 주류음악을 우선시하겠다는 문체부의 그래미상처럼 특정 인기 음악만 밀어주면 음악계의 장래는 암담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대중음악상 김창남 선정위원장은 “국가가 개입하면 국가가 원하는 음악만 인정받는 등 음악을 만들 때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하기 마련”이라며 “대중음악에 국가 지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존에 잘 진행되는 상을 지원하면서 고칠 것은 고쳐나가며 발전시키는 방식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음악팬들의 공감을 얻는 진정한 ‘한국판 그래미상’이 등장하려면 음악 종사자들과 지원자 간에 음악의 다양화가 주는 의미에 대한 소통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 초 국립오페라합창단이 예산절감과 수익성 부족을 이유로 강제 해체되는 일이 벌어졌다.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들은 문체부를 상대로 장기간 철회 요구 투쟁을 벌였으나 결국 좌절되고 현재 노동부의 지원을 받아 ‘나라오페라합창단’을 창단한 상태다. 공공노조 국립오페라단 지부 최상배 부지부장은 “유인촌 장관은 비용절감을 이유로 국립오페라합창단이 규정 없는 유령단체라며 일관성 없는 경제 논리로 합창단을 해체했다”며 “오페라 공연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합창단을 폐지하는 것은 오랜 시간 맞춰온 앙상블과 호흡이 중요한 오페라의 장르적 특성을 무시한 정책”이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한편 대학로 공연에 대한 지원은 대형 뮤지컬 등 상업성을 충분히 갖춘 작품을 선정해 소규모의 연극단들이 재정난을 겪고 있다. 극단의 한 관계자는 “창작 환경이 열악해 해체된 연극단들이 많다”며 “자유로운 창작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문체부가 할 일 아닌가”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문화연대 문화정책진단 배성인 공동소장은 “집중된 공연지원금을 분산시키고 실험극을 상연하는  전문극장의 특성화를 통해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지금 시행하는 대학로예술극장 평균임대료의 40%만 받고 무대를 제공하는 방안의 범위를 확대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문체부의 경제적 문화산업 기조를 고수한 문화정책의 결과는 문화, 경제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이 문화를 통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발상을 경계해야 함을 보여준다.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처장은 “그동안 이명박정부의 문화정책은 무늬만 문화지 실제로는 맹목적인 경제개발주의의 성격을 내재한다”며 “맹목적으로 문화를 개발하고 상업화하려는 정책은 문화의 맥락과 사회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나온 실수”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문화연대 원용진 집행위원장은 “문화정책은 단순히 문화부가 소관이 아니라 국가의 문화적 층위를 기획하고 생성하는 과정”이라며 “국민의 삶의 질, 국가의 정체성 등에 대한 고민 속에서 문화정책이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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