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경기도미술관 「1990년대 이후의 새로운 정치미술: 악동들 지금/여기」전

내년 1월 3일까지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려

발터 벤야민이 “예술작품은 어떤 측면에서도 영역적으로 국한할 수 없는, 한 시대의 종교·형이상학·정치·경제적 경향들의 총체적 표현”이라고 말했던 거창한 구절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예술은 우리네 현실이고 사회고 삶이다.

1980년대 시위 현장에는 민중미술 화가들이 그린 대형 걸개그림이 자주 등장했다. 그림 속 현실 비판적인 내용과 강렬한 색채는 현장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이른바 민중미술 화가들이 그린 작품이었다. 1980년대 초 시작된 민중미술은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대학가와 정치집회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 민주화가 진전되고 동구권의 몰락으로 민중미술도 급속히 퇴조했다.

노순택 「망각기계」, 보존성 안료 프린트, 5x140x100cm, 2008
사진: 경기미술관 제공

경기도미술관에서 내년 1월 3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1990년대 이후의 정치미술을 실험하는 젊은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자본주의 경제의 고도성장과 대중소비문화의 정착 과정을 목격한 이들 작가는 한편으로는 민중미술 정신을 계승하는 경향을 보이는 동시에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필치로 현실을 위트 있게 비튼다. 이들은 정치사회적 병폐뿐 아니라 대중소비사회의 광경과 일상성에 주목하면서 그에 내재된 폭력을 풍자·고발한다. 최근에 들어 민중미술은 현실참여와 비판의식에 작품성이 매몰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었지만 이번 전시는 민중미술이 이를 극복하는 새로운 국면을 제시한다. 민중미술은 그간의 사회비판적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매체와 재료에 대한 무한한 관심을 바탕으로 고전 페인팅부터 웹, 가상현실에 이르는 다양한 매체를 구사해 작품의 독창성과 미적 수준을 끌어올렸다. 이들의 예술적 실험이야말로 정치예술의 개념과 정의를 변화, 확장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양아치, 「혁명가」, 비디오 프로젝션, 사운드, 2009
사진: 경기미술관 제공

가령 국내외 정치인들이 경기장에서 소동을 벌이는 장면을 통해 국제정치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위트 있게 담은 서평주씨의 「지구인들 난리다」는 신문을 캔버스 삼아 기사의 사진과 제목 위에 유화로 그린 독특한 작품이다. 그런가 하면 5.18 광주항쟁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복원해 보여주는 노순택씨의 「망각기계」는 한국 현대사 속에서 자행돼 온 살육과 야만의 역사를 환기시킨다. 웹아티스트에 관심이 있다면 양아치씨의 작품도 눈여겨 볼만하다. 컴퓨터를 이용해 대상을 색다르게 재해석하는 그는 이번 전시회에서 비디오 프로젝션에 음향효과를 넣은 작품 「혁명가」를 선보인다. 이외에도 총 33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에선 회화, 사진, 조각 및 영상 설치 작품을 총 150여점 선보일 예정이다. 김종길 학예연구사는 “1993년 문민정부 출현,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등 다양한 사건을 통해 1990년대만의 독특한 시대감성이 형성됐다”며 “1980년대 민중예술과 다른 새로운 해학과 익살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의: 경기도 미술관 (031)481-7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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