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종류의 언어문화는
인류의 공동재산이자 보물창고
소수 언어 보존 위한 연구
국가 차원의 뒷받침 필요해

 

김주원 교수
언어학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몇 년 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의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도가 너무 적어 창피한 수준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받기만 했다면 한국의 경제 규모가 커진 이제는 국제적으로 정당한 기여를 해야 할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언어학도 이제 국제적인 기여를 할 때가 됐다고 본다.

언어학은 언어의 구조를 연구하는 학문이며 여러 하위 연구 분야로 세분된다. 필자의 전공은 그중에서도 역사비교언어학이다. 쉽게 말해 알타이언어를 대상으로 한국어계통론을 연구한다고 보면 된다. 즉 한국어의 조상 언어를 찾는 연구이고 더 나아가 한국인의 뿌리를 찾는 연구다. 한국인의 뿌리 의식이 유별난 탓인지 이 분야에 관심을 둔 사람이 많아 연구가 시작된 이래  약 100년간 지속되어 오고 있다.

우리가 이 분야의 연구를 하는 동안 세계의 언어학계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여러 언어학자는 소수민족의 언어가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는 것을 목도한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강력한 다민족 중앙집권 국가가 여럿 생겨나고 통신이 발달해 위세 있는 언어의 확산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쓸모를 잃어버린 소수민족 언어는 절멸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유례없는 절멸을 겪은 후 언어학자들은 마치 생물종 다양성이 지구의 미래를 지킬 수 있다고 보듯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이 인류의 미래를 보장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왜냐하면 어떤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는 그 민족의 사고방식, 전통적으로 지켜온 가치관, 삶의 지혜 등이 담긴 그 민족의 정수이며 이러한 언어 하나하나는 결국 인류의 공동재산이자 보물 창고인 점에서 앞으로 어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더라도 여러 민족의 언어 속에 담겨 있는 지혜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앞서가는 나라의 학자와 연구기관에서 절멸 위기의 언어에 관심을 두고 이들의 언어를 유지 보존하기 위해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연구를 절멸 위기에 처한 언어의 문서화(Documentation of Endangered Languages)라고 하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화됐다. 현재의 상태대로라면 지금 사용되는 6천여개의 언어 중 금세기 말에  절반이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계산이 나와 있다. 그리하여 지금은 10여개 국가의 학자와 연구기관에서 세계의 절멸 언어를 대상으로 문서화 작업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이들은 이러한 연구가 “의무를 다하는 언어학”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렵고 힘든 작업에 임하고 있다. 이들의 연구가 어떤 특정 언어의 계통을 찾으려는 종래의 전통적 언어학 연구와는 성격이 다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세계 13위의 경제 규모를 가진 한국의 언어학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처럼 한국어 계통연구에 만족하면서 우리의 조상을 찾고자 알타이언어 사전들을 뒤적이고 있어야 할까? 중요한 사실은 한국어와 관련이 있다는 알타이계 언어 상당수가 심각한 절멸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한국어와 관련 있을 가능성이 큰 언어라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언어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이들 언어를 절멸 위기에서 구해내
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의 학문 능력도 향상해 이제는 세계 언어학계에 기여할 때가 됐다. 언어문화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이러한 연구는 그 자체로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언어학자의 의지와 능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국가 차원의 재정적 뒷받침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세계의 언어학계가 한국의 언어학자들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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