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주제를 다뤘던 장편소설 침체기에
웹진의 등장이 하나의 돌파구 될 수 있어
하지만 장편소설의 시대적 가치 제고해야

장편소설의 빈곤은 한국 소설 침체 논의의 중심에 서 있다. 문학 베스트셀러 대다수가 장편소설일 정도로 대중은 단편보다 장편소설을 선호하지만 한국 문단은 전통적으로 단편소설의 예술성에 더 주목해 장편소설의 공급이 충분치 않았고 그나마 1970~80년대 사회·역사적 상황 속에서 출간된 묵직한 사실주의 장편소설이 1990년대에 뜸해지면서 한국독자들은 일본소설 등 외국번역소설에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 장편소설의 미래를 묻다

한겨레 최재봉 문학전문기자의 2007년 1월 1일자 칼럼 ‘한국소설, 장편으로 진화하라’를 통해 처음 제기된 ‘장편소설 대망론’은 장편소설의 활성화를 통해 침체에 빠진 한국소설문학을 구하자는 제언에서 시작됐다. 외국문학계에서는 소설가의 역량이 장편에 집중돼 단편보다 장편이 활성화돼 있지만 한국 문단은 제도적 현실때문에 단편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장편소설 대망론’은 같은 해 문학계간지 『창작과 비평』(창비)여름호 특집기획 「한국 장편소설의 미래를 열자」를 통해 논의의 폭이 확대된다. 이 기획은 장편소설 집필에 얽힌 작가들의 체험을 소개하면서 한국 장편 침체 현상을 진단했다. 소설가 김연수는 “사실상 연재하지 않는 장편소설을 쓰는 작가의 기대 수입은 단편소설을 쓸 때 보다 4분의 1 정도로 줄어든다”며 “단편 위주로 형성된 한국문학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한국작가가 더 많은 장편소설을 쓰기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한편 ‘장편소설 대망론’에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문학평론가 권성우 교수(숙명여대 국어국문과)는 같은 해 6월 「창비주간논평」에 기고한 글에서 장편소설 활성화론에 공감하면서도 저널리즘, 출판 등 문학제도에 의해 장편소설이 상업주의에 종속되는 결과를 우려했다. 이어 그는 “진정한 장편 부흥을 위해 시대적 성찰과 비평적 대화의 기능이 먼저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학계간지 『문학과 사회』의 편집위원인 문학평론가 이광호·우찬제씨 역시 같은 해 가을호 서문을 통해 반론을 제기했다. 그들은 장편소설 침체 원인으로 문예지의 단편중심주의를 지목하는 주장에 대해 “예전에도 많은 독자를 확보하는 대중적 장편소설은 많았다”며 “문제의 핵심은 장편의 수가 아니라 왜 좋은 장편소설이 나오지 않을까”라고 반박했다.

‘장편소설 대망론’ 등장 이후 한국소설의 장편비중은 높아져 왔다. 제도적으로 소설문학에서 장편 비중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뒷받침된 결과다. 장편 연재만 싣는 계간지인 『자음과 모음』이 지난해 창간됐고 『창작과 비평』등 문예지들도 장편 연재 지면을 고정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세계문학상, 중앙장편문학상, 멀티문학상 등 고액의 고료를 내건 장편문학상도 늘어났다.

◇웹진의 부활과 소설연재의 온라인 진출

한편 장편소설의 발표 지면이 온라인으로 확장되고 반향을 일으키면서 장편소설 활성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PC통신 시절 인터넷 문학이 아마추어 작가의 장르문학 중심이었다면 최근 인터넷 소설은 기성 문단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웹 사이트나 블로그 상에 장편을 연재하는 방식으로 발표된다. 지난 2007년 박범신 작가는 네이버 블로그에 『촐라체』를 연재해 100만명 이상의 방문자를 기록했다. 황석영 작가와 도정일 평론가가 공동편집인으로 참여해 화제가 된 문화웹진 『나비』가 지난 7월 창간돼 시인 겸 소설가 김선우, 김도언씨 등의 작품을 연재 중이며, 문학웹진  『뿔』 역시 4개의 장편소설을 꾸준히 연재하고 있다.

인터넷 연재와 웹진의 등장은 장편소설 연재 지면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황석영 작가의 『개밥바라기별』,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 등도 포털사이트에 연재돼 인기를 모은 후 단행본으로 출간돼 수십만 부 이상이 팔렸다. 알라딘, 교보문고 등 온라인 서점,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가 연계된 웹진에서 장편을 연재한 후 출판사가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시스템이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신문연재가 급격히 줄어들고 기존 문예지 역시 독자들을 끌어모으지 못하는 가운데 웹진의 부활은 장편소설의 연재 지면을 확대하고 독자가 별도의 구매비용 없이 소설을 접할 기회를 제공해 1970~80년대 신문연재와 같은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문학평론가 김명석씨는 “독자와 작가의 상호소통이 댓글 등을 통해 이뤄지는 인터넷 매체가 문학의 새로운 세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웹진의 작품 연재가 출판사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문학평론가 조영일씨는 “웹진의 작품 연재가 이대로 인기 작가 위주로 간다면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유명 작가의 장편소설은 연재 후 단행본으로 출간되면 웹상 연재물은 삭제되기 때문이다.

◇장편소설의 과제와 담당한 역할

장편소설 활성화와 인터넷 문학 공간 확대라는 ‘희소식’에도 한국 장편소설의 시대적 가치, 세계관의 문제,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 논의는 여전히 필요한 상황이다. 황석영 작가는 『창비』 특집 기고에서 “장편소설이야말로 한 작가의 역량이 제대로 드러나는 분야이며 문학의 본령”이라며 우리 장편이 탄탄한 사회적 메시지와 설득력, 서사와 현실을 갖추고 예전의 영향력을 되찾을 것을 주문했다. 한편 방민호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삶의 파편화와 외면화를 특징으로 한 현대 사회체제에서는 내성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관성적 방법으로는 장편소설이 쓰이기 어렵다”며 좋은 장편소설이 창작되려면 “제도적 지원 문제보다 작가의 독자적 문제의식 찾기”가 근본적 과제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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