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아프간 추가 파병은
강대국 향한 열망의 수단일 뿐
지난날 파병의 대가로 맞바꾼
‘생명의 가치’ 잊어선 안돼

서종갑 사회부장
한때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인사에게는 여지없이 ‘좌파’라는 낙인이 찍혔다. 낙인이 아로새겨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은 숙청됐고 그맘때쯤 인터넷을 떠돌던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명박정부는 비판이 들어오면 비판을 치지 않고 존재 그 자체를 친다.” 가볍게 웃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존재 그 자체를 친다’는 대목에서 잠시 멈칫하게 된다. 인간과 생명 그리고 인권에 대한 이명박정부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아 섬뜩함마저 느껴지기에.

현재 진행 중인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이러한 두려움이 괜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정부는 지방재건팀(PRT) 인원을 확대하면서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300명 규모의 파병 절차를 밟고 있다. 게다가 이번에 파병되는 군인들에게는 적대 세력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무장 능력이 갖춰질 예정이다. 그들이 전장에서 이 무기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상상하지 않아도 뻔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아프간에 우리 군을 추가 파병하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역설한다.

정부가 아프간에 추가 파병을 계획하면서 밝힌 명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42개국 정도가 (아프간에) 파병하고 있다”는 것이며 “글로벌 코리아로 가기 위해 테러와의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하나의 의무”라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얼핏 보면 그럴듯하다. 그러나 그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석연치 않은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우선 42개국의 파병국가를 살펴보자. 이들 대부분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다. 이들 국가는 회원국인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를 나토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나토 조약의 ‘자동개입’ 조항에 따라 개입한 나라들이다. 더군다나 전체 유엔 회원국의 5분의 1만이 파병한 상황에서 한국의 파병을 ‘국제적 의무’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가 따른다. 이쯤 되면 정부의 아프간 파병 속내가 궁금해질 법도 하다.

의문을 해결할 단초는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일정에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11월 중순 방한할 예정인데, 정부는 미 대통령의 방한 이전에 아프간 파병을 결정한다는 내부 방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익히 알고 있듯 정부는 아프간 재파병을 대가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일정 조정 및 북미대화를 포함한 미국의 대북정책 견제를 시도할 것이다. 결국 정부는 외교·군사적 측면에서 이익을 얻으려 아프간 재파병을 결정한 것이다.

정부의 속내는 밝혀졌다. 그것은 바로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국익’. 이 두 글자를 앞에 두고 지금부터는 감히 ‘생명’이라는 가치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그 속에서 교훈을 찾으려는 열정에서 기인한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옹호하는 이유도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살육당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전쟁이 명분도 없는 단지 강대국의 ‘욕망’을 위한 것이라면 반대해야 마땅하다.

정부가 이 전쟁에 우리 군을 파병하려 한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공공연히 “한국이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알아서 해 달라”며 사실상 파병을 요구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정부가 자진해서 ‘조공’을 바친 것이나 다름없다.

아프가니스탄은 우리에게 낯선 땅이 아니다. 몇 해 전 고(故) 김선일씨가 ‘파병의 대가’로 참수형을 당하는 끔찍한 일이 있었고, 샘물교회 교인들이 피랍되는 사태도 있었다. 정부는 철군을 약속하고서야 겨우 교인들을 구해올 수 있었다. 그때, 우리 국민은 정부의 아프간 파병 결정 때문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정부는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국익에 우선하는 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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