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성 교수
산림과학부
나이 늦게 초등학교 아들이 있어 나름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점을 직접 경험한다. 자식 교육에 대해 나름 흔들리지 않는 부모들도 있지만, 대부분 전문직을 선호하는 사회적 시류를 타게 되고 그래서 초등학교부터 공부를 잘하면 바로 의대, 법대가 목표가 된다. 지질, 해양, 산림, 천문학 혹은 역사학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동네에서도 ‘이상한 애’로 취급한다. 오래전부터 서울대에 학과별로 늘어서던 서열이 이젠 오히려 분야별로 굳어져 이런 ‘비인기학과’를 공부하려는 기린아를 찾기 정말 어렵다.

올해만 해도 스포츠에서는 WBC 야구 대표팀, 피겨의 김연아, 수영의 박태환 등을 기억하는데, 이런 천재들이 휩쓰는 우리와 비교되는 일본은 어떤 차이가 있나 생각해 본다.  1년 농사와 달리 밤, 감, 사과 같은 나무는 최소 10년은 바라보고 키워야 하는 것처럼, 실력은 저변이라는 밑거름이 있는데, 저변보다는 우수한 개인에 의존하는 우리와 달리 두터운 선수층을 가진 있는 일본은 확실히 우리보다 강하다. 학문 세계는 유도의 한판승처럼 단박에 승부가 나는 세계가 아니므로 이러한 저변이 중요한 것이다.

대부분의 분야가 기초와 기반이 있듯 내 전공분야인 식물분류학의 기반은 식물표본과 표본관이다. 시인이자 식물학자였던 에델베르트 본 샤미소는 표본관은 식물학자의 도서관이라 했다. 작년 연구년에 하버드대 동아시아 표본을 보고 지금은 우리 대학 소장 표본 10만여점을 비교하면서 정리하고 있는데, 외국의 표본관과 비교해서 우리나라는 아예 표본관을 관장하는 학예사 같은 정규직 자리조차 없어 제대로 된 표본관을 관리하기 어렵다. 국내 각 대학에서는 표본 수만 자랑하지, 실제 대학원에서 표본을 관리하는 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고, 그나마도 마치 늘 10% 부족한 우리의 생활스포츠 여건과 비슷하다.

표본실에 표본이 꽉 차서 더 표본을 모을 공간이 없기어 고민하지만 해결점은 없기에 늘 고민으로 끝난다.  곤충, 동물, 식물분류학 연구실에는 대학원생이 없어 교수가 파리채 들고 파리를 잡는 것도, 이런 표본실 공간에 대해 대학 내 싸늘한 눈초리에 한몫한다.  테러리스트와 협상이 돼도 교수와는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자신의 세계에서만 오직 다른 세계를 평가하는 데 익숙한 대학에서는 자연에서 경험을 중시하면서 오랜 시간을 소비하는 학문을 하는 교수와 학생은 소위 SCI 논문 숫자가 부족해 열등하다고 여겨지고, 학생들 역시 자연 속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을 하는 세계보다는 빠르고 편한  학문을 선호하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우리는 대학 내에서도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학문적 멸종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시모집 학생들에게 단골 도서인 ‘연금술사’에서는 세상이 자신을 가르치고 또 그 속에서 배우고 꿈을 느끼고 실천하고, 그런 실천의 세계 속에서 깨달음, 즉 ‘지혜’를 갖는다는 표현이 있는데 우리 같은 분야에서는 실제 ‘지식을 담는 큰 그릇’보다는 자연을 이해하는 ‘지혜를 가질 사람’을 찾고 있다. 결국 멸종 돼가는 열악한 상황의 학문이지만, 그래도 피겨의 김연아, 마라톤의 이봉주, 테니스의 이형택 같은 선수처럼 선진국과 기술력에서 100년 뒤진 이런 분야에서 뛸 ‘선수’를 늘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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