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이맘때 삼성그룹 전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정기적으로 검찰간부에게 500만~2천만원을 건넸고 국세청 인사에게는 단위가 더 컸으며 언론에는 10만~30만원 정도씩 줬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당시 기자들 사이에서는 “검찰이나 공무원보다 싼값에 팔리는 게 아니냐”는 자조 섞인 농담이 오가기도 했다.

그동안 물가인상분을 반영해 기자의 ‘값’도 오른 것일까? 김준규 검찰총장이 최근 기자들과 회식자리에서 번호표 추첨으로 50만원씩 든 돈 봉투 8개를 건넸다가 논란이 일자 유감을 표했다. 과연 그날의 술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검찰은 돈은 줬지만 촌지는 아니라고 했다. 공개석상에서 줬으므로 촌지가 아니며 술자리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김 총장이 즉흥적으로 한 일이라는 주장이다. 촌지가 아니라면 그 돈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은 접어두더라도, 공적인 만남(검찰수뇌부와 출입기자단의 회식은 충분히 공적인 만남이다)에서 돈 봉투를 내걸고 추첨 행사를 하면 분위기가 뜰 것이라는 발상은 도대체 어떤 맥락인지 알 수 없다. 어색한 술자리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경품 추첨을 한다는 발상도 우습지만 대한민국 검찰총장과 우리나라 주요 언론사의 검찰출입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렇게까지 분위기를 띄워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돈 봉투로 어색한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할 수 있다는 발상을 내놓은 장본인이 바로 대한민국 검찰총장이라는 사실이다.

기자들도 실망스럽다. 검찰총장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가차없이 꾸짖는 기사를 쓰는 것이 기자다. 그런데도 돈 봉투가 오가는 추첨행사에 대해 단 한명의 이의제기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당첨되지 않은 일부 기자들은 2차 술자리에서 다시 추첨을 해 돈 봉투를 더 받았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앞으로 나올 검찰관련 기사의 수준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더욱 가관은 언론의 보도 태도다. 처음 이 사실을 보도한 언론은 단 2곳으로 이마저 없었으면 이번 일은 전혀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몇몇 언론은 사태가 커지자 뒤늦게 기사를 썼지만 나머지는 지금껏 함구하고 있다. 일부 신문은 “검찰총장이 회식에서 기자에게 돈을 건넨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되고 있다”며 마치 제삼자의 일인 양 전달했다. 이 ‘객관화’는 과연 정당한가. 도대체 그날 ‘기자’는 어디에 있었던 것인가.

그날의 술자리가 궁금하다. 그 자리에는 대검 고위간부 8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모두 미래의 검찰총장 후보다. 이들이 정말 불콰한 얼굴로 돈 봉투를 주고받았던 것일까? 받은 이는 현금과 수표가 든 봉투의 두께를 느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남은 사람들은 손뼉치며 당첨을 축하해줬을까? 대검 간부 8명 중 봉투에 돈을 넣어 ‘경품’을 준비했던 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혹시 얼굴이 화끈거리지는 않았을까? 그리하여 결국 주는 이와 받는 이 모두 그날의 행사 덕분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을까? 그날의 술자리가 진정 궁금하다.

김병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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