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이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투명한 햇살에 노란 은행잎이 교정에 흩날릴 아름다운 계절이 머지 않았다. 한 학기의 시행착오 끝에 이제 설렘을 넘어 진정한 대학생활을 꿈꾸는 새내기들의 표정에서건, 졸업을 준비해야 하는 고학년생들의 가볍지 않은 발걸음에서건 자못 예사롭지 않은 긴장감이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강의실에서 연구실에서 한여름 땀을 흘리며 시퍼렇게 날을 세운 이론적 지식의 정밀함을 풀어놓는 지식사회의 한판 굿이 꿈틀거리며 제대로 한 번 또아리를 풀겠다. 아니 그랬음 좋겠다.


서글프게도 서울대 아카데미아의 첫 개강 모습은 우리의 자존을 여지없이 허무는 피곤한 실존의 조건으로 다가올 것 같아 마음이 우울해진다. 교육 및 연구, 학습 환경과 관련해 그 예야 많겠지만 여기서는 학교 오기와 밥먹기 이 두 가지만 불평해 보련다. 우선 학교 오기를 생각해보자. 서울대입구 전철역과 녹두거리에는 다시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긴 행렬이 시작될 것이다. 낙성대 전철역 근처의 마을버스 승차장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갈아타고, 기다리고, 다시 걷고 하다 보면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진이 빠진다.


밥먹기는 어떤가. 12시가 가까워지기 무섭게 식당 앞에는 목을 빼고 앞줄만 바라보는 배고픈 학생들이 안쓰러운 풍경을 연출하겠다. 내 연구실이 있는 사회대 주변을 예로 들면, 과장을 보태서 사회대 앞 후생관 식당에서 늘어선 줄이 자하연 근처까지 올라오고 자하연 식당에서 시작된 줄은 거꾸로 자하연을 돌아 후생관 쪽으로 내려가는 진풍경이 일주일이면 며칠씩 재연된다. 가끔씩 들러보는 공대나 음미대 주변의 식당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싶다.


이것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서울대 아카데미아의 일차적 현실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그 문제제기가 항상 개인적인 투덜거림에 머물거나 다른 학내 구성원 탓으로 돌려진다는 사실이다. 상록의 식구들이 이번 학기부터 새로이 관악에 둥지를 틀게 되었으니 이제 더욱 비좁은 식당과 셔틀버스의 피곤함은 애꿎게도 이들 탓으로 돌려질지도 모를 일이다. 문제해결방식도 개인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점심시간대를 피하거나 그나마 짧은 줄서기가 가능한 햄버거와 콜라를 찾아 카페테리아를 찾거나, 중국집 전화번호를 뒤지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적응방식이 대다수 구성원들에게 해결방책이 될 수는 없다.

 
서울대학교가 21세기 지식사회기반을 선도하는 세계수준의 종합연구대학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지 수년이 지났다. 세계적 수준의 학문 수월성을 추구하거나 국가의 세계화를 선도하는 대학을 만들겠다고 했다. 교무와 학사의 여러 측면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그 성과를 보이는 부분도 상당하리라. 그런데 학교 오기, 밥먹기 같은 기본적인 복지는 왜 여전히 이 모양인지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세계적 수준의 대학이 되려면 다른 무엇에 앞서 수십 분씩 줄을 서서 식사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셔틀버스 기다리는데 힘을 다 빼가지고서야… 답답한 심정이다.

 
서울대를 세계적 수준의 대학으로 만드는 것은 모두가 염원하는 바이다. 하지만 그 목표이자 방법의 하나로 학교오기와 밥먹기와 같은 일상적인 공동생활의 조건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윤석민
사회대 교수·언론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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