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소설가 김사과씨“무한 경쟁 속 생존 투쟁 벌이는 우리들별생각 없이 제대로 놀아 보는 건 어떨까요”

 

사진: 이다민 기자 aasterion@snu.kr

우주에서 뚝 떨어진 김사과

2005년, “하늘에서 사과가 떨어졌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1984년생, 22살의 김사과가 「영이」로 창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것이다. 당시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새내기였고 소속도 문학과 다소 거리가 먼 영화학과였다. 그는 2년 뒤 첫 장편소설 『미나』를 발표했고 오는 16일 두 번째 장편소설 『풀이 눕는다』을 출간할 예정이다. 단편소설 「정오의 산책」은 2009 황순원문학상 최종후보작에 오르기도 했다.

등단, 유력 출판사에서 장편 두 권 출간, 권위 있는 문학상 최종 후보까지.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26살 신인이 일군 열매라고는 믿기 힘들다. 여기에 ‘사과’라는 특이한 필명과 외고를 자퇴한 특별한 이력까지 보태면 그의 ‘포스’는 범인(凡人)들을 주눅 들게 한다. 괴물이거나, 최소한 천재일 것으로 추측되는 소설가 김사과, 그를 만나러 갔다.

그에게서 먼저 소설가 지망생들의 ‘꿈’이자 ‘벽’인 등단을 단박에 해낸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화과에 입학했는데 영화에 별 관심이 없어 방황하면서 우울한 첫 학기를 보냈어요. 방학 때 앞으로 뭘 할까 진지하게 고민해보니 그나마 제일 잘하는 게 글 쓰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2학기에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잘 쓴다고 계속 칭찬을 해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좋아서 계속 썼어요. 선생님이 그동안 쓴 것 중 문학상 공모에 하나 내보라고 하셔서 냈어요.” 그래서 그는 등단한다. 참 쉽다. 학부 글쓰기 수업에 제출한 작품으로 등단하다니, 모르긴 몰라도 한국 문단 등단사(史)에서 흔한 일은 아닐 게다.

쎄게, 끝까지 밀어 부친다

서사창작과로 전과한 그는 지난해 첫 장편소설 『미나』를 펴낸다. 『미나』는 주인공인 ‘수정’이 한때 ‘절친’이었던 ‘미나’를 부엌칼로 잔인하게 살해하는 이야기다. 수정은 안정적인 계급의 재창출을 위한 교육제도에 완벽히 순응한 여고생으로 시스템이 요구하는 문법을 완벽히 구사한다. 그녀는 시험지 위의 세계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고, 자신이 군림하는 그 세계를 경멸한다. 그런데 그녀의 유일한 친구인 미나가 친구의 자살로 세계에 대한 경멸의 포즈를 동정의 포즈로 바꾼다. 수정은 미나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미나를 갖고 싶다. 결국 그 불쾌감을 해소하기 위해 미나를 죽인다.

한국의 부조리한 교육시스템이 빚어낸 비극 『미나』에는 김사과 작가가 학창시절 동안 경험한 부조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제가 공부를 못하게 생겼는지 처음엔 열등생 취급을 하던 선생님들이 제 성적을 보고 나면 태도가 바뀌더라고요. 같은 잘못을 해도 제가 성적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벌을 덜 받기도 했고요. 결국 공부만 잘하면 아무 말도 못하는구나. 어린 마음에 그런 냉소적인 생각을 하게 됐죠. 저는 이렇게 공부만 잘하면 좌절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이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아이들을 괴물로 만드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미나』가 던지는 메시지는 교육 제도를 향한 일격에서 그치지 않는다. 여기엔 ‘신자유주의’, ‘개발지상주의’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한국 사회의 지배적 관념에 대한 경계도 담겨 있다. “주인공 ‘수정’으로 상징되는 극우적 관념, 그것을 신자유주의로 부르든 박정희식이라 부르든 이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말하고 싶었어요. 무한 경쟁 속에서 타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비유적으로 짓밟는 게 아니라 진짜로 죽이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경고가 담겨 있어요.”

이번엔 ‘확’ 부드러워 졌다

『미나』는 파괴적 소설이다. 친구를 죽이기 위해 고양이를 벽에 던져 살인을 예행연습 하는 내용에 욕설이 난무하는 여고생의 대화를 그대로 옮긴 듯한 문체까지 파괴적인 기운을 물씬 풍긴다. 그러나 이번에 출간될 『풀이 눕는다』는 다르다. 낭만적인 연애소설에다 문체도 무난하다. 같은 작가의 작품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제 기준에서는 그다지 심하지 않은 『미나』 정도의 파괴성에도 사람들의 거부반응이 심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많이 읽히고 싶어서 최대한 파괴적인 걸 지양했어요. 살인이나 폭력의 등장을 최대한 자제하고 읽기 쉽도록 소설 문법에 맞게 쓰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재미가 좀 없어진 것도 같아요.”

자신만의 스타일이나 신인 작가의 패기를 자제해가면서까지 『풀이 눕는다』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미나』가 쓰고 싶어서 쓴 소설이라면 『풀이 눕는다』는 써야 해서 쓴 소설이에요. 전 개인적으로 세대론에 별 관심이 없는데, 그럼에도 20대로서 우리 세대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의무를 한편으로 느껴왔거든요. 지난 촛불 정국 때도 그렇고 20대가 무기력하다고 비판받는데, 사실 20대가 패배주의에 빠져 있는 건 사회 시스템이 문제가 있기 때문이잖아요. 그래서 『풀이 눕는다』에서는 우리 20대가 놓인 비관적 현실을 보여주려 했어요.”

『풀이 눕는다』는 20대인 주인공이 길을 가다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져 무조건 쫓아가는 데서 시작된다. 동생에게 경제적으로 기생하는 주인공은 화가 지망생인 ‘풀’과 함께 옥탑방에서 빈궁하지만 낭만적인 동거를 시작한다. 매일 아침을 볶음밥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돈 없이 사랑 속에서 굶어 죽고자 한다. 그러나 막상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자 둘의 동거생활은 파탄 나고, ‘풀’은 비참한 고시원 생활로 내몰린다.

『미나』처럼 『풀이 눕는다』도 다분히 사회비판적이다. 선택받은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20대가 오늘날 처해있는 생존투쟁의 현장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풀이 눕는다』는 소위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20대의 비극을 시스템의 잘못으로 돌리는 데서 머물지 않는다. 김사과 작가는 ‘히피적’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한 대책 없는 낭만적 삶으로 20대들을 초대한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LA의 부랑자가 아름다워 보인다고 말한다. “LA에 가서 거지가 되는 삶을 긍정하는 자세, 그게 이 책의 주제예요. 살고 싶은 대로 살다가 죽고. 되게 낭만적이잖아요.” 그렇게 살면 ‘풀’처럼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지 않겠냐는 반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원래 정말 잘 노는 사람들의 말로는 비참해요. 히피들을 보세요. 그런데 말로가 그렇다고 잘 논 게 사라진 건 아니잖아요. 결말이 좀 암울하긴 하지만 이걸 읽은 사람들이 걔네들처럼 한번 놀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또 어디로 튈지 예측 불가

이상한 유혹이다. 작가가 독자를 LA 부랑자의 삶으로 초대하다니. 그런데 앞으로 사과의 유혹은 더 이상해질 예정이란다. “『풀이 눕는다』를 쓰고 나서 대중적인 소설은 안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힘들었어요. 앞으론 진짜로 작정하고 이상한 거 쓰려고요. 사람들이 제 소설이 너무 잔인하다고 그러는데 진짜 잔인한 게 어떤 건지 보여주려고요. 포르노그래피도 써 볼 생각이고 폭력 자체를 탐구하는 소설도 쓰고 싶어요. 앞으로는 더 발전된 이상함을 추구할 생각이에요.” 김사과, 그가 작정하면 소설은 어디까지 이상해질까. 언제 어디선가 느닷없이 떨어질지 모르는 이상한 사과에 다들 바짝 긴장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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