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보통 말하는 ‘잡기(雜技)’라는 것에 늘 취약했던 것 같다. 규칙도 잘 잊어버리고 실수투성이고 모든 놀이에서 다른 친구들로부터 늘 뒤쳐졌다. 그러나 욕심은 많아, 지는 것은 싫어했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고무줄 놀이, 오자미 놀이 등 그 당시 놀이들은 편을 갈라서 하는 것이 많았는데, 이렇게 실력 없이 욕심만 많은 나를 친구들은 ‘깍두기’라는 이름으로 늘 잘 끼워주었다. 특히 양쪽 숫자가 맞지 않아 편이 갈라지지 않을 때, 더욱 요긴한 것이 이 깍두기이다. 깍두기란 이쪽 편도 저쪽 편도 아니고, 양편 모두에게 속하게 되어, 이편과 다른 저편 모두에 참여하게 되는 역할이다. 통상적으로 워낙 기술이 모자라, 어느 한 쪽에 끼면 그 아이가 속한 쪽이 거의 지게 되는 경우에, 그런 아이가 깍두기가 된다. 깍두기는 양쪽에 끼어 게임을 두 번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고,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으므로 지는 것을 겁내지 않고 놀이를 즐길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 내게는 너무나 좋은 제도였다.

그런데 요즈음 시대라면 깍두기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두 번씩 놀이를 즐기는 특전을 누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영락없이 ‘왕따’가 되지 않았을까.

집단을 구성하여 힘없는 한 명의 피해자를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왕따(Wangta) 현상은 bullying(영국, 미국 등), bullismo(이태리), lingru(중국), Ijime(일본) 등의 용어로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적으로 심각한 폭력현상의 한국 형태이다.

왕따 현상이란 사실 최근에만 일어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마도 인간이 가지는 본능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다른 이질적인 사람을 인정해주기 보다는 배척하고 싶은 본능적 욕구 말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면신례’라 불리던 관리들의 신참 신고식에서도 왕따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면신례는 기존 관리들이 새로 뽑힌 관리들을 괴롭히는 형태였다. 물론 이것은 신고식이라 할 수 있겠지만 단순하게 신고하는 차원인 한 두 번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과 의도적인 공격적 행위들이었다는 것,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하급자를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을 볼 때 면신례는 일종의 왕따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면신례의 유형으로는 벌주 먹이기, 얼굴에 오물 칠하기, 광대짓 하게 하기, 선배관원의 가랑이 밑으로 지나가게 하기 등의 신체적 괴롭힘뿐 아니라 선배들에게 값비싼 술과 음식을 대접하게 하는 등의 경제적 수탈까지 행해졌다. 또한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특정 관리를 선배들과 새로 뽑힌 관원들이 합심해서 모욕을 주고,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정신적 괴롭힘을 하였고 그것이 점점 심해져 급기야 단종 1년에는 승운원에 파견된 ‘정윤화’라는 신입관리가 면신례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고, 숙종, 중종 때는 면신례를 법으로 금하기까지 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어느 조직에서든 왕따 분위기가 소리 없이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깍두기’라는 이름으로 자존심을 지키게 해 주었던 친구들의 그 넉넉함이 많이 그립다.

곽금주 교수 사회대 심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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