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래시장은 지역축제 개최, 상인 재교육, 리모델링 등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지난해 이래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침체 위기에 빠진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전통을 통한 재래시장 활성화’ 정책을 들고 나섰다. 지난 3월 토고미 마을 장터에서 열린 ‘튀밥 재즈콘서트’, 지난 4월 수원 못골시장에서 열린 ‘쫄깃쫄깃 봄떡 나눔축제’를 비롯해 지난 9일(월) 전통시장 현대화사업 추진안을 밝힌 인제시장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11일 서울문화포럼 주최로 KT&G 상상마당에서 열린 포럼 ‘서울을 바라보는 네 개의 시선’에서는 ‘시선3. 지역고유의 장소성과 현대화 : 경동시장’이란 주제로 논의의 장을 열었다. 특히 이번 포럼은 최근 정부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아 시장을 재정비했지만 찾는 사람이 없는 동대문 경동시장을 중심으로 재래시장 정책의 추이와 그 실효성에 초점을 맞췄다.

포럼의 시작과 함께 이무용 교수(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는 시장을 상품의 유통경로나 거래소가 아닌 사람이 살아가는 삶터를 의미하는 ‘플레이스(place)’라는 개념으로 정의했다. 그는 “전통시장에는 사람들의 삶이 물리적 환경과 어우러져 만드는 독특한 문화 요소가 많다”며 전통시장에서 새로운 상품가치를 창출할 가능성을 엿봤다. 이어 이 교수는 “경동시장이 ‘국내 최대 한약재’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제품의 사용가치적 접근 방법만 부각시킨다”며 “지역성을 반영한 독특한 아이템을 개발하는 노력 없이는 재래시장 활성화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 지적했다. 커뮤니티연구소 류제홍 소장도 이에 동의하며 현행 시스템에 일침을 가했다. 그는 “상인 사회 내부에 기존의 부흥회가 있는데 새로 상인회를 만들어 지원금을 분할해 나눠 갖는 등 폐해가 심각하다”며 “정작 지원이 필요한 곳에는 수혜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어떤 형태의 시장이 만들어져야 할까? 류제홍 소장은 “주변의 다른 시설과 연계해 지역 내 공동체를 조성하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일본에서는 지자체가 직접 시장에서 채소를 구매해 시장 내 음식점에서 도시락을 만들어 독거노인에게 배달하는 시스템이 운영된다. 미국에서도 시장 상인들에게 조금씩 세금을 걷어 주변에 공원 등 공익시설을 개설해 시장을 공동문화공간으로 만드는 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는 시장이 지역 복지와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데 일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무용 교수도 네덜란드의 ‘City Safari’ 제도를 제시하며 “사람들이 일률적으로 인솔자를 따라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시장이 아니라 시장 사람들과 어우러지면서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자국을 방문하면 방문자를 맞이하겠다고 지원한 자국시민을 만나게 해준다. 이를 신청한 외국인들이 네덜란드를 방문하면 정부는 아무런 정보제공 없이 지원자의 주소만 주고 알아서 찾아가게 한다. 방문자는 이 과정에서 지역 사회를 체험하고 그 문화를 느낀다.

한편 사회를 맡은 남기범 교수(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는 폐창고를 이용해 상업지구를 만든 요코하마의 ‘아카랭카’와 셔터에 그림을 그려 가게가 문을 닫아도 ‘시장다운’ 느낌을 주는 광주(光州) 대인시장을 언급했다. 그는 “문화적 접근이란 약간의 인식변화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것”이라며 “재래시장 활성화는 정부의 정책이나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실제 그 장소에서 살아가고 장소를 이용하는 우리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시장을 바라보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래시장은 서민경제를 이루는 한 축 이상의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재래시장이 어떻게 변화하면 상업기능을 넘어 사람들 속에서 공동체를 구축하고 사회복지를 실현하는 공공의 장이 될 수 있을지, 모두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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