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한국미학회 추계학술대회

 

조영선
미학과 석사과정

 

아직 도래하지 않은, 단 하나의 목적지로서의 유토피아를 사유하던 시대는 지났다. 유토피아 시대란 인류의 보편성을 근거로 하나의 의미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시대다. 이제 우리는 차이와 다원성에 대해 말한다. 포스트-유토피아 시대의 사유는 유토피아 시대의 담론이 언어를 통해 중심부와 주변부의 위계를 ‘재현’하면서 공고히 해 왔음을 고발한다. 따라서 포스트-유토피아 시대는 지배적 재현 규범의 해체를 그 특징으로 한다. 이 시대의 민주주의는 구성원의 합의가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예술은 정치-민주주의와 어떠한 관계를 맺을 것인가? 예술이 현실과 유리된 것도 아니며 단지 정치적 도구로써 현실을 재현하는 것도 아니라면 어떻게 정치와 함께 놓일 수 있는 것일까?

하나의 진리 내세우던 유토피아 시대 벗어나

지난 7일(토) 한국미학회는 고려대 조형학부와 공동 주최로 ‘유토피아 시대 이후의 예술과 정치’라는 주제로 추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김남시 강사(미학과)는 「철자주의 Lettrism의 실천적 함의-문자의 가시성이라는 관점에서」를 통해 문자의 물질성에 주목한다. 그는 다다이스트의 철자주의 시를 “어떠한 유토피아적 미래나 고정된 의미에 스스로 고착시키지 않으면서 시대의 헤게모니적 담론을 해체하려는 전복적 시도의 결과물”로 평가한다. 문자는 가독성을 위해 가시성을 은폐하는 구조를 지니는데 다다이스트는 가시성의 강조를 통해 고정된 의미화 체계를 무너뜨린다. 나아가 하우스만의 포스터 시는 문자의 가시적 조형성마저도 부정한다.

양효실 강사(미학과)는 「텍스트 실천의 관점에서 보들레르의 ‘현대적 삶의 화가’읽기」에서 언어의 지배성을 가시화해 지배 담론을 내부로부터 해체하는 데 주목한다. 그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합의가 아니라 불일치와 갈등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차이의 체계를 드러내는 글쓰기의 실천을 통해서 예술은 정치와 관계를 맺는다. 그는 모더니스트인 보들레르의 ‘현대적 삶의 화가’를 텍스트 실천적 글쓰기로 놓는다. 보들레르가 모던의 내부에서 이미 전복의 가치를 선취하는 것을 읽어내는 것이다.

김남시 강사와 양효실 강사가 지배적 구조의 해체를 드러냈다면, 박기순 교수(충북대 철학과)는 「랑시에르에서 미학과 정치」에서 말할 수 없었던 자들이 말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의 구성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 랑시에르는 ‘감성의 분할’이라는 개념을 통해 정치와 미학의 연관성을 이해한다. 순수직관의 감성적 형식으로 시간, 공간을 제시한 칸트는 “대상들은 지성의 개념들에 의해 파악되기 이전에 먼저 감성적 형식 속에서 지각된다”고 본다. 랑시에르는 이에 주목해 “가장 근본적 구별은 감성의 분할, 즉 시간과 공간들,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말과 소리의 분할에서 주어진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관계들에서 본질적으로 문제 되는 것은 바로 시공간에서의 신체들의 상징적 배치, 감성적 배치다. 랑시에르가 예술체제라 부르는 것은 예술적 실천들이 감성의 질서와 맺는 관계에 대한 특정한 이해방식이다. 예술은 감성의 분할에 관계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정치적이다.

박기순 교수는 랑시에르의 민주주의가 합의를 전제하고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불화에 내재하는 합리성이다. 유토피아적 재현의 질서에서 벗어나서, 지배적인 하나의 방식만이 아니라 여러 방식을 통해서 말할 수 없었던 자들도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랑시에르는 미학적 예술체제를 제시하면서 재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재현의 의미를 재정의한다. 미학적 예술 체제에서는 모든 것이 동등하며, 어떤 방식으로도 재현될 수 있다. 여기에서 예술은 새로운 공동체 형성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예술 체제에서 모든 것은 동등
예술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이번 학술대회는 토론을 강화해 기존에는 각각의 발표와 논평 이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던 것과 달리 마지막 순서에 종합 토론 시간을 줬다. 정치와 예술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개념 정의 문제부터 구체적 실천 방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논의로 짧지 않은 토론 시간을 훌쩍 넘겼다. 다양한 관점에 따른 주장이 자유롭게 발언 되면서 이날의 주제처럼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담론의 긍정적 의미를 보여줬다. 예술은 사회로부터 고립된 그들만의 섬이 아니다. 예술에 대한 사유와 우리의 삶과 세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언제나 이미 세상을 변화시키는 예술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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