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
이성형 지음 / 그린비
496쪽 / 2만5천원
20여년 전 라틴아메리카에는 미국발 신자유주의 개혁이라는 ‘대홍수’가 밀려들어 왔다. 1982년 외채위기에서 시작된 라틴아메리카의 신자유주의 개혁은 남미 각국의 급격한 대외 개방과 민영화를 요구했다. 본격적 시장개혁이 시작된 지 20년 정도가 흐른 지금은 신자유주의 실험에 대한 공과를 살펴보기 적당한 시기다. 신자유주의가 처음 도입되던 시기에는 열광적 지지 혹은 비판만이 존재했지만 20년간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면서 결과를 평가할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대홍수』는 멕시코, 브라질, 쿠바 등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철저한 사례 연구를 통해 중남미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다각도로 평가한다. 저자 이성형 교수(라틴아메리카연구소)는 199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한 이래 수차례의 현지방문과 인터뷰, 자료 수집을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신자유주의를 연구해온 전문가다.

저자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신자유주의 개혁 모델을 받아들인 멕시코와 브라질 사례를 분석하며 그 명암을 극명히 드러낸다. 멕시코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을 통해 대외경제 개방, 민영화를 급속히 진행했다. 그 결과 멕시코의 경제구조가 제조업, 수출 중심으로 재편되고 무역수지는 흑자로 돌아섰다. 그러나 NAFTA가 사실상 대미의존도 심화, 생산 공정의 단순화, 다국적 기업의 하청 기업화를 초래하면서 멕시코 노동자의 삶이 파괴됐다. 실질고용 및 임금 감소, 양극화 심화 등을 견디지 못하고 북쪽 국경을 넘는 불법이민자 수의 증가는 NAFTA의 실패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멕시코가 신자유주의 개혁을 급격히 추진하는 동안 브라질은 국내 산업을 일정 부분 보호하며 시장개혁을 병행하는 발전주의 전통을 유지했다. 신자유주의 개혁을 수용하면서도 연금과 세제 개혁 등을 단행해 재정의 건전화, 수출경제 활성화 등을 달성한 브라질은 브릭스(BRICs)의 구성원으로 고성장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정책적 측면으로 아르헨티나, 칠레 등 중남미에서 진행된 기간산업 민영화 결과를 살펴본다. 이들 나라는 외채위기 이후 대외개방 등 미국주도의 시장개혁 일환으로 국유기업 민영화를 졸속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전력산업의 독과점 체제화가 진행되고 외국계 기업이 실질적으로 전력산업을 지배하는 기간산업의 탈국적화 등 심각한 후유증을 앓게 된다.

저자는 한·미자유무역협정 논쟁에서 찬성과 반대 입장이 각각 멕시코 NAFTA 경험을 아전인수 격으로 끌어다 쓰는 것을 경계한다. 멕시코와 한국 상황이 일대일로 대응될 수 없어 단순비교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신자유주의의 ‘대홍수’가 라틴아메리카에 남긴 사회·경제적 지각변화를 토대로 한국 또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이득과 손실을 구체적으로 살피는 작업이 필요한 때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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