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아』의 저자 크리스티앙 트루베는 전쟁의 지휘관처럼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한다. 그는 이미 『L’Humanitaire en Turbulences(소용돌이에 빠진 인도주의)』 『Les Forcene de l’Humanitaire(광란의 인도주의)』 등의 저서를 통해 인도주의의 위기를 진단한 바 있다. 이 책에는 자칫 자기만족에 그칠 수 있는 감상적인 문구는 단 한 줄도 없다. 기존 서적에서 쉽게 볼 수 있던 난민 사진 대신 무수한 통계와 자료조사, 정치와 경제에 관한 고찰 그리고 그로부터 도출된 분석만이 가득하다. 이런 객관적 시선은 우리가 몰랐던 기아의 이면을 직시하게 한다.
농업 기술의 발달로 반세기 만에 생산량이 두 배로 늘어난 오늘날, 지구 상에서 7명 중 1명은 배가 고파도 먹지 못한다. 1990년대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어느 마을 사람들이 집단으로 굶어 죽고 있을 때 불과 몇백 킬로미터 떨어진 수도 니아메에서는 세계대회가 개최되고 있었다. 10여년의 내전이 계속되는 네팔은 2명 중 1명꼴로 영양 결핍상태에 시달리고 있다. 또 영하 50도 이상이 내려가는 혹독한 이하로 기후로 가축 400만 마리가 사망한 몽골 농민들은 하루 앞을 약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트루베가 이런 현상에서 끄집어낸 진실은 굉장히 불편한 것이다. 저자는 남아도는 식량을 개발도상국으로 나른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역설한다. 정권 다툼과 계급 차별, 자본주의의 불평등, 낙후된 보건과 교육 등이 이 지루한 전쟁을 지속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식량난이 아닌 총체적 사회문제 속에서 발생한 기아에 대해 ‘새로운 기아’라는 단어를 붙인다. 새로운 기아는 내전 중인 네팔에서 발생한 ‘정치적 기아’, 혹한의 피해를 본 몽골의 ‘기후적 기아’ 등으로 분류되며, 현상의 복잡한 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지난 2000년 9월 UN 정상회의 참가국이 선정한 첫 번째 새 천 년 목표는 2015년까지 기아와 관련한 수치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식수가 오염돼 보급된 치료용 가루 우유조차 먹을 수 없는 지역에 무작정 행해지던 원조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저자는 기아 문제를 제대로 알고 행동하는 것이 해결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전 세계 8억5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명을 내건 오랜 전쟁의 한 복판에서 싸우고 있다. 『새로운 기아』라는 병서를 펴들고 기아를 겨냥할 때다.
백수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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