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아
크리스티앙 트루베 지음
김성희 옮김 / 알마
184쪽 / 9천원
전쟁을 종식하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인류애가 아니다. 치밀한 전략과 행동만이 그 동력이 된다. 6년여의 시간 동안 약 2천5백만명의 전사자와 4천만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제2차 세계대전에서 포탄을 멈추게 한 것은 동정심과 연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만큼 고루한 또 다른 전쟁이 아직도 남아있다. 하루 2만 5천여명의 사망자를 내는 역사적으로 가장 범위가 넓고 가장 장기적 대전(大戰), 바로 기아(飢餓)다.

『새로운 기아』의 저자 크리스티앙 트루베는 전쟁의 지휘관처럼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한다. 그는 이미 『L’Humanitaire en Turbulences(소용돌이에 빠진 인도주의)』 『Les Forcene de l’Humanitaire(광란의 인도주의)』 등의 저서를 통해 인도주의의 위기를 진단한 바 있다. 이 책에는 자칫 자기만족에 그칠 수 있는 감상적인 문구는 단 한 줄도 없다. 기존 서적에서 쉽게 볼 수 있던 난민 사진 대신 무수한 통계와 자료조사, 정치와 경제에 관한 고찰 그리고 그로부터 도출된 분석만이 가득하다. 이런 객관적 시선은 우리가 몰랐던 기아의 이면을 직시하게 한다.

농업 기술의 발달로 반세기 만에 생산량이 두 배로 늘어난 오늘날, 지구 상에서 7명 중 1명은 배가 고파도 먹지 못한다. 1990년대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어느 마을 사람들이 집단으로 굶어 죽고 있을 때 불과 몇백 킬로미터 떨어진 수도 니아메에서는 세계대회가 개최되고 있었다. 10여년의 내전이 계속되는 네팔은 2명 중 1명꼴로 영양 결핍상태에 시달리고 있다. 또 영하 50도 이상이 내려가는 혹독한 이하로 기후로 가축 400만 마리가 사망한 몽골 농민들은 하루 앞을 약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트루베가 이런 현상에서 끄집어낸 진실은 굉장히 불편한 것이다. 저자는 남아도는 식량을 개발도상국으로 나른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역설한다. 정권 다툼과 계급 차별, 자본주의의 불평등, 낙후된 보건과 교육 등이 이 지루한 전쟁을 지속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식량난이 아닌 총체적 사회문제 속에서 발생한 기아에 대해 ‘새로운 기아’라는 단어를 붙인다. 새로운 기아는 내전 중인 네팔에서 발생한 ‘정치적 기아’, 혹한의 피해를 본 몽골의 ‘기후적 기아’ 등으로 분류되며, 현상의 복잡한 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지난 2000년 9월 UN 정상회의 참가국이 선정한 첫 번째 새 천 년 목표는 2015년까지 기아와 관련한 수치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식수가 오염돼 보급된 치료용 가루 우유조차 먹을 수 없는 지역에 무작정 행해지던 원조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저자는 기아 문제를 제대로 알고 행동하는 것이 해결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전 세계 8억5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명을 내건 오랜 전쟁의 한 복판에서 싸우고 있다. 『새로운 기아』라는 병서를 펴들고 기아를 겨냥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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