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훌쩍 변한 대학
발전과 순수성 맞바꾼 현실
대학교육 개혁 필요하며
이를 위한 차기총장의 역할 기대

이준규 교수
물리·천문학부
이 대학의 강단에 선 지 벌써 30년 가까이 됐다. 30년 전에는 왠지 어설프고 미숙하게 느껴졌던 이 교정의 구석구석에 이제 묵은 정취가 물씬해진 것이 나는 좋다. 그동안 머리카락은 회색빛이 됐고, 꽤 급했던 성정(性情) 대신 시간을 재면서 감정을 표출하는 법을 배웠으며, 우주의 진리도 조금 터득했다. 내가 거쳐 온 시공간의 많은 부분이 이 대학에 이어져 있었다. 자연대 물리학과는 내 학과였고, 이곳에 혼자만의 쉼터가 있어 여기서 나는 오늘도 식물로 태어난 내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그리고 내 사랑을 씹는다. 지난날이 그립다.

당시에는 이메일도 휴대 전화도 없었다. 30년 전에는 개인용 자동차만 있어도 최상류층에 속했고 골프를 치는 사람은 모리배로 간주할 정도였다. 많은 이공계 교수들조차 외부에서 소액의 연구비라도 받기 쉽지 않았으며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도 정말 영세한 수준이었다. 그때는 소위 SCI 저널에 논문을 내는 교수도 극소수였다. 오늘날 주위에 수억대의 외부 연구비를 받고, 한해에 SCI 논문만 20편 이상 게재하다 보니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논문조차 전부 파악하기 어려워하는 교수, BK 지원금에 추가적인 장학금까지 받으면서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이 있는 것을 보면 세상이 많이 변했다. 그리고 그때는 군부독재 시대였기 때문에 우리가 저항할 대상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대상도 명확하지 않다.

그리운 것은 지나간 사람이다. 당시의 학생들(지금은 이미 중년의 나이가 지난 사람들)에게서는 순수한 꿈과 불확실에 대한 도전을 엿볼 수 있었다. 선배 교수들과도 통하는 정이 있었다. 그것들을 나는 지금의 학생들로부터, 그리고 젊은 후배 교수들로부터 보지 못한다. 순수성을 잃은 학생들,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후배 교수들을 나는 좋아할 수 없다. 세상 돌아감에 약간의 지혜를 터득했기에 그들에게 세상을 속이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떨어져 살고 싶다.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럴까? 사실 이들이 나보다 발전한 인간 유형일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은가. 정령들이여, 부디 우리의 이 새로운 세대에게 축복을 내리소서!

세상 변하는 것이 무섭게 빠른 것 같다. 1980년대에 소니하면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굴지의 전자제품 회사였는데, 당시에는 비교도 안되게 초라했던 우리나라 회사 삼성이 이제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선박과 자동차가 지구상의 바다와 육지를 누비기까지 한다. 50년 전만 해도 세계 빈민국 대열에 들었던 우리가 지금은 세계 13번째 경제 대국이란다.

그렇지만 우리 대학이 세계 속에 차지하는 위치는 전혀 자랑할 만하지 못하다. 서울대의 교육 수준은 1980년대와 별로 차이가 없고, 양적인 연구 성과만 세어서 세계 50위니, 30위가 됐느니 하고 법석인데 그런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할 만큼 나는 어수룩하지 않다. 또 서울대는 말만 종합대지 옛날 그대로 단과대들의 연립체와 다름없다. 사회가 변한 만큼 서울대는 내용상으로 크게 변한 것이 없다. 그리고 서울대에서 더는 순수한 마음조차 찾기 어렵게 됐다. 나는 서울대의 미래를 자신 있게 그리지 못하겠다.

내년에는 서울대의 새 총장을 뽑아야 한다. 이 사람 저 사람이 총장이 되겠다고 한다. 서울대에는 변화가, 특히 교육에는 개혁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그 개혁이 대학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길 갈망한다.

서울대가 법인화 체제로 가면 새 총장이 맡게 될 책임은 더욱 막중해질 것이다. 나는 소위 원만한 인품을 가졌다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가 난 인품일지라도 이 대학의 개혁을 확실하게 이끌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서울대의 그림을 사회로부터 기대와 신뢰를 듬뿍 받게끔 빠르게 변모시킬 능력을 갖춘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런 사람이 총장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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