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세계에서는 요즘 ‘물은 셀프’라는 말이 메아리치고 있다. 이 말의 유래는 이렇다. 지난 14일 탄핵 관련 보도가 편파적이라며 방송국을 항의 방문한 야당 의원들이, 방송국 측에서 자신들을 홀대한다며 “도착한 지 12분이 지났는데 물 한잔 없습니다”라고 기자들에게 하소연한 일이 있었다. 이 장면이 알려지면서, 국회의원이므로 영접을 받아야 한다는 야당 의원들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네티즌들은 ‘물은 셀프’라는 말로 꼬집기 시작했다. 그러자 탄핵 가결을 비롯한 야당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 말미마다 ‘물은 셀프’라고 적어 놓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물은 셀프’라는 표현은 음식점에 서 흔히 볼 수 있다. 정확하게는 ‘셀프서비스’라고 표현해야 하지만, 줄여서 ‘셀프’라고들 쓴다. ‘셀프서비스’는 서비스의 일부를 고객 스스로 하고, 그로 인해 절약된 인건비만큼 소매가격을 내려 판매하는 방법이다. 고객이 몇 발짝 걷는 수고만 감수하면, 주인과 고객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상생’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종업원을 줄이거나 가격을 낮추지도 않는 가게에서, 이발소에 걸린 명화처럼 벽면을 장식하는 인테리어처럼 나붙어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최근 ‘물은 셀프’라는 말이 인터넷으로 옮겨지면서, 그 말은 하나의 은유이자 암호, 구호가 되었다. ‘물’은 죽음과 생명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또 노자에 따르면 가장 이상적인 태도는 물과 같은 것이며, 강해지려면 흐르는 물처럼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물은 셀프’라는 말은 가장 존귀하고 강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며, 자신의 삶과 죽음은 자신이 주관한다는 뜻을 지닌 일종의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조금 성급한 해석을 덧붙이자면, 이 은유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1조의 의미를 조금 유머스러운 형태로 구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말에는 절차적 정당성과 형식적 법치라는 이름 아래 실종된, 국민주권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되살리려는 국민들의 요구가 담겨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헌정은 중단되지도 않았고, 민주주의가 죽지도 않았으며, 탄핵은 의회의 쿠데타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형식적 논리들로 국민을 계몽하려 들 때가 아니다. 이미 국민은 은유를 통해 형식적 논리에 갇힌 현실보다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한 야당의원이 말한 ‘어리석은 백성들’은 조선왕조의 몰락과 함께 이미 모두 죽고 없다. 또 보수언론의 걱정과는 달리 ‘섬뜩한 인터넷 공방’은 ‘사생결단’의 국론분열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고도의 은유를 통해 현실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문학적 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러니 불안하고 격해진 감정을 달래기 위해 냉수를 마셔야 할 사람은 국민이 아니라 국민을 얕보는 지식인과 국회의원들이다. 물론, 물은 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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