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전염되지 않는 학생선거
슬퍼할 구체적 대상이 필요해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질
‘새’를 대상으로 선정함은 어떨까

황예인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부끄러운 고백 하나. 6년 전 이맘때, 인문대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선본 이름은 ‘Design Alternative’로 대기 속에 티나(TINA: There Is No Alternative)의 흐름만이 가득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함께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의미였다. “대안은 있다!”고 외치면서 손을 번쩍 들고 웃고 있던 여자애의 사진을 기억하는 이가 있을는지. 열사가 자꾸만 생겨나던 시기였다. 그분들이 찍어놓은 영원한 쉼표들이 남은 이들에겐 긴 말줄임표가 돼서 대체 어떻게 다음 문장을 써야 하나 마음 졸이던 날들이었다. 정권도 비판했고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도 호소했지만 실은 그때 고민은 정치보다는 이런 쪽에 더 가까웠다. ‘이 슬픔은 왜 전혀 전염되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예상했었지만 그럼에도 몹시 우울했던 낙선이 남긴 것은 이런 의문. ‘대체 우리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잠시, 다른 이야기. 지난 10일(화)부터 영산강, 낙동강을 시작으로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본격화됐다. 이 정권과 함께 살아온 지 2년째(아, 아직도), 그러니까 깊게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이 사업으로 살게 되는 것이 절대 강은 아닐 것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그 누가 살게 되는 대신 다른 누군가가 죽는 것이라면, 비유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정말로 영원히 이 세계에서 사라지는 존재들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4대강 사업의 핵심은 수심을 6미터 깊이로 준설하고 물을 채우는 것. 해마다 이 땅에 찾아오는 철새의 94% 이상이 잠수하지 못하는 수면성 오리에 속한다. 그러니까 수심이 저렇게 깊어지면 철새 대부분이 긴 비행 중 쉬어갈 곳을 영영 잃어버린다는 뜻이 된다.

이 이야기를 조금만 더. 왜냐하면 아직도 6년 전의 고민, 슬픔의 전염 경로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지만 적어도 슬픔이 구체적인 데서 온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됐으므로. 4대강 사업 중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설치될 총 20개의 보 가운데 9개가 설치되는 낙동강에는 해마다 13만 마리의 철새가 찾아온다. 그냥 철새가 아니라 노랑부리저어새(얕은 물가에서 끝 부분이 노란 주걱모양의 부리로 조개를 잡는), 큰고니와 고니(고니는 우아한 백조, 큰고니는 ‘홋호, 홋호, 홋호’ 울고 고니는 더 낮은 소리로 ‘호우, 호우’ 울고), 흑두루미와 재두루미(두루미는 연하장의 학, 흑두루미는 목이 하얗고 몸 전체는 검고, 재두루미는 뺨이 붉어 수줍고 ‘뚜루루 뚜루루’ 울고)가 날개를 접고 십 수만 개의 영원한 쉼표로 떨어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면 결코 끝나지 않을 길고 긴 말줄임표들을 바라보며 어떤 문장을 쓸 수 있을까.

다시 고백의 자리로 돌아오면, 그때 늦가을, 선거의 마지막 날 유세를 마치고 해방터에서 큰 소리로 외치던 우리의 인사 “Let’s Design Alternative Today, 우리 앞으로 그러한 인연을 맺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21살 때 당차게 건넸던 인사처럼 우리가 누구인지 쉽게 선언하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더듬거리며 이야기해본다. �대동단결�과 �Yes, We Can�의 ‘우리’, �리본�이 연결하고자 하는 ‘너’, 그리고 �R-EVOLUTION�과 �권리찾기�의 생략된 소유격, 그 안에 ‘새’가 있으면 어떻겠냐고. 오로지 ‘새’만을 위한 선거를 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지구의 저편에서 이편으로 날아오다가 이번 겨울에도 낙동강과 영산강과 금강과 한강에 머물 그 수십 마리의 새들을 떠올리면서, 대학원생이 먼발치에서 우물쭈물 말해본다. 오로지 새만을 위한 선거,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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