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희 교수
국어국문학과

지난 1학기 필자가 담당한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강좌에 제출됐던 기말보고서 가운데 일부를 추려 『국어학논집』 제6집이라는 논문집을 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학기가 끝난 후 발표회를 하고 여름방학 동안 몇 차례의 독회를 거쳐 드디어 논문집을 간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국어학논집』은 원래 고영근 선생이 정년퇴임 하시기 전에 수강생들을 채근해 꾸리던 것이다. 이제 필자가 바통을 넘겨받아 그 논문집을 간행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선생은 지금까지도 후학들이나 제자들을 채근하기로 유명하시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꼭두새벽에 전화를 걸어 독촉과 채근을 하셨다. 요즈음은 전화 외에 전자우편으로도 채근을 해 대시니 다들 ‘연락’이라는 제목으로 선생의 전자우편 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필자는 선생을 속으로는 ‘채근 선생님’으로 부른다.

이 『국어학논집』의 서문을 쓰다가 ‘이는 오로지 고영근 선생의 열정과 채근으로 시작돼 쌓인 것이었다’는 문장에 사용된 ‘채근’이라는 단어가 문득 생소하게 느껴져 국어사전을 찾아 다시 확인했다. 그만큼 이제 ‘채근’과 ‘채근하다’는 단어가 우리 곁에서 멀어져 가기 때문이다. ‘채근’은 원래 ‘採根’이라는 한자어로 ①식물의 뿌리를 캐냄, ②어떤 일의 내용, 원인, 근원 따위를 캐어 알아냄, ③어떻게 행동하기를 따지어 독촉함, ④남에게 받을 것을 달라고 독촉함의 의미를 가지는 다의어다. ①의 의미에서 ②, ③, ④의 의미로 전이돼 나간 과정이 자못 흥미롭다.

필자는 이기문 선생의 논문 쓰기를 늘 부러워하면서 본받으려 노력하고 있다. 선생은 정년퇴임 전 캐비닛 속에 미리 집필하신 수많은 원고를 쌓아 두고 원고청탁이 올 때마다 그 잡지나 학술지 성격에 가장 걸맞은 원고를 택해 보내곤 하셨다.(지금도 선생은 육필로 원고를 쓰신다.) 항상 원고 마감일에 쫓기다 못해 그 날을 넘겨가며 헉헉대는 필자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르셨다.

필자도 정년퇴임 전 컴퓨터 안에 원고파일을 잔뜩 쌓아 두고 그 학술지 성격에 알맞은 글을 선택해 보내리라 결심을 하기는 하지만, 쓰고 싶은 글의 주제 목록만 만들어 두고 아직 한 편의 글도 완성하지 못했다. 심지어 이 글마저 마감일을 넘겨 채근을 받고 있으니 다른 원고야 말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채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채근을 받는 입장이 되다 보면, 기가 질겨진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어떤 분은 연구비를 신청할 때 미리 원고를 다 써 두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필자에게는 꿈속에서의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교수나 부모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아랫사람들을 채근하는 일이 많아진다. 그러나 ‘평소에 지은 죄’가 많은 필자는 속이 뜨끔해 강하게 채근을 해 대지 못한다. 워낙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필자가 이러하니 이것저것 주위의 일에 관심이 많은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욱더 감히 채근을 할 수 없다. 아내는 아이들을 방치해 두지 말고 열심히 건사하고 채근하라고 요구하지만 필자는 관악산에 비 지나가는 소리마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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