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업계 초라한 성적표
한식에 대한 이해 선행되야

지난 5월 4일 오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식 세계화 추진단 발족회의.
사진: 청와대 제공
음식은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을 함축하고 있는 중요한 문화 척도로, 음식문화의 발전은 그 나라의 이미지 제고와 관광·음식산업의 발전을 가져왔다. 때문에 여러 나라들은 음식문화 발전을 위한 지원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우리나라도 지난 5월 4일 한식세계화전략 마련을 위한 민관 합동추진단이 출범하면서 한식을 세계화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날 민관 합동추진단은 240여억원의 예산을 들인 외국인 대상 한식문화 체험 프로젝트와 한식 전문 인력 양성, 한식전문식당(한식당) 모델 발굴 등 한식 세계화를 위한 대규모 사업들을 내놓았다. 또한 만화가 허영만씨, 영화배우 배용준씨 등 각계 인사를 위원으로 위촉하는 등 ‘한식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정부의 한식 세계화 사업에 발맞춰 국내 한식당이 2007년 9월 이후 2년간 약 6천개가 증가하는 등 일각에선 ‘한식 중흥기’가 도래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실제 한식업계 종사자들은 이러한 한식 중흥기론에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실제 한국음식업중앙회 박영수 상임부회장은 “최근 한식당이 많이 생기는 것은 경기악화에 따른 생계형 창업으로, 정부가 말하는 한식당 경쟁력과는 무관하다”며 “식당들 중 한식당의 폐업률이 가장 높은 것이 현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한국 레스토랑 가이드 ‘블루리본’이 꼽은 ‘2009년 주목할 만한 새 레스토랑’ 17곳(서울) 중 한식당은 고깃집 1곳에 불과했으며, 서울 17개 특1급 호텔 중 롯데,워커힐 등을 제외한 13곳에서 경제적 이유로 한식당들이 문을 닫게 됐다.

‘한식 세계화’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한식업계의 초라한 성적표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김덕한 교수(대덕대 호텔외식조리학과)는 “한식은 일식, 양식 등에 비해 마진율이 낮아 자생력을 갖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한식은 양이 많고 싸야한다는 편견도 한식업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입학할 때 약 100명의 학생 중 50~60%가 한식을 지원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고급 인력을 유치할 수 있는 규모의 한식당이 드물어 졸업할 때는 20~30%로 줄어든다”며 한식업계의 열악한 실상을 밝혔다. 이처럼 고급 인력이 수혈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식 세계화 사업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박영수 상임부회장은 “한식 세계화 사업이 누구를 위한 사업인지 의문스럽다”며 “많은 한식당이 문을 닫고 요리사들이 한식을 포기하는 상황에서 한식 세계화 사업은 고급 레스토랑과 일부 유명 요리사들에 대한 지원에 국한돼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한식 추진단의 계획은 한식을 산업적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광억 교수(인류학과)는 “한식이 갖는 토착성과 주술성, 상징성들에 대한 인류·문화학적 연구가 부족한 상황에서 한식을 상품화한다는 것은 서양식으로 표준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의 경제적 발전과 한류열풍 으로 인해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증가하고 있다. 또한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 역시 증가해 막걸리, 떡볶이 등의 브랜드화도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앞서 제기된 문제들을 고려해 본다면 한식의 미래와 한식 세계화 사업의 전망이 밝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김광억 교수는 “한식에 대한 이해와 연구 없이 산업적인 면만 고려한 세계화 사업은 음식에 녹아있는 문화와 역사, 예술을 사장시키는 것”이라며 “진정한 한식 세계화를 위해서는 한식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기반으로 한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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