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문화정책진단 ④종합진단

‘선택과 집중’ 원칙 고수하는 ‘문화적’이지 못한 문화정책
이데올로기 떠나 소통하고 교류하며 자율적인 상상력 보장해야

『대학신문』은 3주에 걸쳐 현 정부의 문화정책을 진단했다. 문화정책 진단 4주차에서는 연재를 마무리하며 문화연대 문화정책팀 최지현 활동가의 기고문을 받아 이명박정부의 문화정책을 종합적으로 되짚어보고 앞으로 문화정책이 지향해야 할 바를 제언해본다.

지난 2년여간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늘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문체부가 이토록 주목을 받았던 적이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난 2년여 동안 우리는 그 논란과 주목 속에서 한 국가의 문화예술을 총괄하는 문체부가 가지고 있어야할 기본적인 ‘알맹이’는 확인조차 하지 못했다. 오로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그들만의 문화’를 앞세우며 문체부의 위상과 역할은 ‘정권의 나팔수 노릇’으로 자리매김됐음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문화정책과 문화행정은 혼란과 실패를 양산한 채, 우리가 가진 문화적 가치와 잠재력을 개발과 자본의 논리로 묻어버렸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이후, 문체부는 기존의 업무 영역에 더해 국가 홍보, 미디어, 디지털 콘텐츠 진흥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하지만 이에 비해 문체부가 추구하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문화 공공성과 다양성, 문화적 권리 확대라는 문화정책이 가져야 할 기본전제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문화정책 기조와 목표 외에는 구체적인 정책이 제대로 제시되지 못했고, 발표된 내용마저도 기조와 목표에 구색 맞추기 식으로 단기적 목표 하에 사업을 나열하는 데 그쳤고, 사업 타당성에 기반한 구체적 실행과정과 장기적인 전망은 부재했다.

특히 현 정부의 경기 부양책에 부응하고자 저임금 비정규직 양산에 앞장서고, 개발주의와 자본의 독점을 정당화하는 4대강 사업, 미디어 관련 쟁점들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입각해 엘리트주의적이고 시장중심적인 인식을 기반으로 문화를 바라보는 문체부의 인식을 보여준다. 결국 경쟁과 생존을 강조하는 이명박정부의 신자유주의 이념이 한국사회의 문화예술 전반에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이로 인해 이명박정부의 문화정책은 문화의 다양성과 공공성의 가치를 절하시키고, 문화정책을 일종의 복지나 시혜적인 차원으로 접근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결국 국민의 기본적인 문화적 권리는 침해되고, 국민의 주체적인 문화적 접근은 실현될 수 없게 됐다.

이처럼 근본적인 한계를 보인 이명박정부의 문화정책은 그 과정에서도 전혀 ‘문화적’이지 못했다. 정책수립단계에서도 해당 영역의 문화예술인, 전문가, 시민사회의 검토 및 의견 반영 등 사회적 합의 과정 없이 일방적이고 하향적인 형식을 선택했다. 그리고 한국 문화예술계에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퇴행적 행보를 일삼아 한국 문화예술계는 정치적 당리당략의 싸움판으로 전락했고, 비상식적이고 무원칙적인 영역이 돼버렸다.

또 그간 한국 문화예술계가 자율성, 독립성 그리고 다양성을 기반 으로 축적했던 수많은 과정들과 결과물이 일거에 날아가 문화예술기관 역시 정권의 거수기에 불과했던 과거로 퇴보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 문화예술계는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 문화예술계가 얼마나 더 추락할지 가늠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이는 2010년 문체부 예산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번 2010년 문화부 예산안은 ‘사상 최대 규모’라고 한다. 처음으로 3조원 대를 돌파해, 정부 재정 대비 점유율 1.04%를 차지한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엄청난 규모의 예산안을 편성했음에도, 예산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오히려 우려가 앞선다. 이번 ‘사상 최대 규모’의 예산에서 문화 공공성과 문화민주주의, 국민들의 문화적 권리는 완벽하게 실종돼 있다. 그렇다면 ‘사상 최대 규모’의 예산은 어디에 쓰는 걸까? 2010년 문체부 예산안이 증가세를 보인 부분은 대표적으로 국정홍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 스포츠국제이벤트, 저작권 포렌식 도입, 4대강 사업 등이며 이는 현재 이명박정부가 지향하는 담론과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용안정성과 임금수준을 담보할 수 없는 저임금 비정규직을 양산하며 결코 문화적이지 않은 일자리 사업에 매진하고, 미디어악법 통과로 인해 언론의 공공성과 민주주의가 실종될 위기에 놓인 지금, 문체부 예산안은 보수 매체의 독점을 더욱 강화해, 지역 내 여론의 다양성을 파괴할 가능성이 있다. 2010년 문체부 예산안은 향후 문체부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준다. 자본과 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완화책으로 정당성을 부여하고, 문화예술계의 예술적 자율성을 박탈하며,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문화적 권리는 철저히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예산안 편성은 ‘그들의 일그러진 욕망’이 투영된 논리를 더욱더 공고히 하는 지원수단일 뿐이다. 이로 인해 지난 2년간 벌어진 것보다 더 엄청난 속도로 문화예술계는 파행으로 얼룩지고, 문화영역의 양극화와 계층 간의 소외가 극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우리 일상에 정권수호를 위한 담론들이 무차별적으로 침투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모든 정부는 권력의 정체성과 이데올로기를 떠나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문화정책은 다양한 삶들을 긍정하고, 일상의 행복을 누리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힘은 바로 자율적인 상상력이다. 다양한 삶들이 모여 소통하고 교류할 때 더 큰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고, 이 상상력이 우리의 삶과 사회를 문화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정부의 문화정책은 문화를 그저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로 인해 이명박정부의 문화정책은 수많은 파행을 낳았고 실패햇다. 저 멀리 4대강 주변에 있는 테마파크와 문화시설이 국민들의 문화적 욕망을 채워주고 그 외의 것들은 억압하면 침묵할 것이라 믿기에, 파행의 깊이는 더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지극히 기본적인 것이지만, 너무도 절실한 우리의 문화적 권리와 문화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문화정책과 문화행정의 정상화와 문화 공공성에 기반한 문화적 권리 실현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또 표현해야만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지극히 기본적인 전제를 말해주고 싶다. 일상 속에서 구성원들이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형성하는 문화적인 삶과 권리가 공공성에 기반해 실현되고 존중되는 것, 그것이 ‘품격 있는 문화국가, 대한민국’이 되는 유일한 길이란 것을 말이다.

최지현 활동가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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