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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난도 교수
  • 승인 2004.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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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의 후폭풍이 거세다. TV에서는 관련 특집과 좌담회가 연일 화면을 메우고, 붉은 티셔츠가 장관을 연출했던 광화문 거리에는 밤마다 촛불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탄핵이라는 극약 처방을 사용했던 야당으로서는 적잖이 당황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국회 의결이 있기 전, 많은 지식인들이 “탄핵은 공멸을 부를 것”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를 보냈음에도 야당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을까? 다들 잘 알고 있듯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탄핵의결을 통해 총선을 ‘친노-반노’의 구도로 이끔으로써 안으로는 분열된 전열을 정비하고 밖으로는 여당의 ‘올인’ 작전을 극복하여 득표를 극대화한다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위정자들의 이분법적 총선 전략 벗어나 정책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 야당의 총재는 탄핵이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라고 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진전되자 ‘음모론’도 고개를 든다. 이 사태가 자업자득인지 음모인지 판단할 길은 없지만, 여전히 아쉬움과 우려는 크다. 먼저 진정으로 그들이 나라와 경제를 생각했다면, 그 전에 충분히 절충하고 양보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을 이야기하고 싶다. 한 쪽은 사과의 기회가 있었을 때 오히려 상대를 자극했고, 다른 한 쪽은 지지 않고 극단적인 행동으로 응수했다. 이 대결에는 총선 승리라는 정파의 이익과 전략이 있었을 뿐, 자신들이 대의(代議)해야 할 국민의 이익은 안중에 없었다는 것이다. 여야 모두 광화문을 밝히는 수많은 촛불의 참된 의미를 다시 새겨야 한다.
더 근심스러운 것은 앞으로 다가올 후유증에 대한 우려다. 이번 선거는 모처럼 정책과 대결이 될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다시 이분법적인 흑백논리로 치르게 되었다. 우리는 독재정권 시절부터 늘 양분론적인 전제 아래서 선거를 치뤘다. 지역감정을 한껏 부추겨 선거에 이용하고, 친북ㆍ용공이냐 자유민주주의냐로 선택지를 줄여 놓고 선택을 강요당했던 경험은 아직도 우리 뇌리에 악몽처럼 남아있다. 이렇게 양분법에 의해 선거를 치르게 되면 반드시 치명적인 부작용을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한다. 극단적이고 소모적인 국론 분열이 그것이다. 정권유지의 목적으로 확대재생산되었던 지역감정은 아직도 치유가 어렵고, 친북ㆍ용공으로의 매도는 얼마나 많은 희생을 초래했던가? 민주주의의 요체라고 할 사회의 다양한 이해와 견해 간의 생산적인 조정 대신,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극한 대립의 앙금은 한 정파의 선거승리라는 전리품의 댓가 치고는 너무나 혹독하다. 더구나 이처럼 첨예한 대립구도 아래서 총선을 치룬다면, 어느 쪽이 되었건 그 승자는 도덕적 오만에 빠질 것도 걱정된다.

 


이래저래 어느 편인가가 아니라 어떤 정책인가를 기준으로 투표를 하려 했던 유권자들은 참으로 난감한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한쪽은 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해 총선연기와 개헌의 가능성에 골몰하고, 다른 쪽은 한껏 호의적인 여론에 표정관리를 고민하고 있지만, 정작 이번 총선을 통해 우리 사회의 가장 후진적인 병목이라고 할 정치판을 투명하고 생산적으로 바꾸어보고자 했던 유권자들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극단적인 대결양상을 보이는 선거의 열기에 휩싸인 정치인들이 미래지향적인 정책대결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기는 이제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체된 경제, 복잡해져가는 외교적 이슈, 지리멸렬하는 교육제도, 슬기로운 조정이 필요한 많은 사회복지에 관한 논란 등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정책을 개발하여 유권자의 선택을 기다려도 모자란 판이다. 이 중차대한 선거를 상호비방의 무한경쟁 아래 ‘바람’과 ‘역풍’의 혼조 속에서 치른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있을 것인가?
해답은 우리가 가지고 있다. 한 판 쇼에 흔들리지 않고 성숙한 선택을 하는 길 뿐이다. 위정자들의 상투적인 이분법적 총선 전략에서 한 걸음 물러나 정책과 비전을 기준으로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것만이 정치인들에게 국민 무서운 것을 절감하게 할 유일한 방도이다.

김난도 생활대교수ㆍ소비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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