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사회학
잭 바바렛 지음 / 박형신 옮김
이학사 / 334쪽 / 1만8천원
광우병 파동과 용산 참사 등 굵직한 사회문제가 등장할 때마다 촛불을 들고 광장을 메운 사람들.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학자의 심정은 복잡하다. ‘합리적 선택 이론’처럼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규정하는 고전적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잭 바바렛 등 사회학자 8명의 논문으로 구성된 『감정과 사회학』은 이를 이해하기 위해 ‘감정’이란 키워드를 제시한다.

전통적 사회학은 아이러니다. 인간 공동체인 사회에서 감정은 사회구조 속에서 형성되며 행동의 동기로서 사회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학은 ‘비합리적이고 충동적’이라는 이유로 감정을 학문적 탐구 대상에서 배제해왔다. ‘감정사회학’은 이렇게 개인적·미시적 영역으로 간주됐던 감정을 거시적 사회현상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로 규정한다. 책은 엮은이 바바렛이 펴낸 『감정의 거시사회학』의 연장선상에서 감정사회학의 이론적 토대와 학문별 최근 논의를 망라한다. 저자들은 9·11테러, 기업 조직, 학계 내의 경쟁 등 다양한 사안으로 ‘감정이 사회 구조와 행위를 연결한다’는 핵심 명제를 정치·경제·과학 분야에 적용한다.

마벨 베레진은 「안전국가: 감정의 정치사회학을 향하여」에서 감정을 정치의 본질로 규정한다. 법, 선거, 정당 제도 등 국가를 지탱하는 요소들은 합리성에 기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베레진은 국가를 확대된 가족으로 설명하는 민족국가에서 정치공동체에 정당성과 힘을 부여하는 것은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정치 엘리트들이 사회 구성원의 공동체에 대한 친밀함과 애착을 유도하고 국가를 유지한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결국 민족국가는 감정 조작으로 만들어낸 ‘프로젝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국가는 표준어와 획일화된 교육제도, 그리고 대규모 행사를 통해 애국심을 고취시킨다.

감정사회학은 이성의 영역으로 알려진 과학에도 적용된다. 바바렛은 「과학과 감정」에서 감정이 과학적 사실 자체와는 무관하지만, 이를 생산하는 과학자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한다. 과학자가 특정 대상을 선정해 연구하는 데는 대상에 대한 호기심과 연구 성과에 대한 기대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검증된 이론도 특정 가치를 지지하는 ‘감정적 동의’ 없이는 공동체에 수용되지 못한다. 여기서 감정이 연구과정에 개입하는 것이 비합리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통념이 부정된다. 감정은 이성과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신뢰와 같은 ‘배후감정’이 이성적 판단을 실행으로 옮기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감정사회학이 최초로 논의된 것은 1970년대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도 감정은 여전히 주류사회학에서 홀대받는다. 짧은 논문들로 구성된 책은 획기적이고 깊은 연구 성과를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간과된 감정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지금 당신이 기사를 읽는 것도 모든 합리적 이유 이전에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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