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외적 발전 지향이 불러온
한국사회 고질적 병폐 ‘정쟁’
민생문제는 정쟁 뒤에 묻힌
‘막장’같은 정치에 씁쓸하다

국회가 법정시한(12월 2일) 내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소식에 놀랄 사람이 있을까. ‘막장’ 드라마에 익숙해지면 웬만한 ‘막장’ 스토리는 진부한 소재로 전락한다. 예산안을 두고 벌어지는 정쟁(政爭)은 국제적 망신살이 뻗쳤던 집단 난투극까지 경험한 사람들에게 심심한 이야기다.

미디어법, 세종시, 4대강 사업…. 하나같이 현 정부의 정책과 맞닿아있는 사안들은 좁게는 여야 간 의견차가 심한 정쟁의 쟁점 현안이고 넓게는 한국의 정치·사회를 아우르는 이슈다. 새삼 이슈라 말하는 것조차 무색한 논란거리들은 매번 진전 없는 공회전 공방으로 점철돼 정쟁 그 자체보다 더 지루하다.

국회의사당을 격투장으로 만들었다가 헌법재판소의 웃지 못할 명언을 남기고 다시 국회로 돌아온 미디어법 재개정 논의는 뜨겁다고 느낄 감각 기관마저 마비시킨 뜨거운 감자다. 여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라진 세종시 논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불씨만 던져놓은 모양새다.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불길을 잡으려 섣부르게 대책 없는 종합선물세트만 던지니 다른 계획도시마저 잿더미가 될 판국이다. 명칭을 제외하고 대운하 사업과 구별이 안 가는 4대강 사업은 일단 빨리빨리 파고 보자고만 한다. ‘파보지도 않고 어떻게 안 좋을 줄 아나요? 판 뒤에 결과를 확인하세요’가 그 여파를 우려하는 사람들을 달래는 4대강 사업의 캐치프레이즈인 듯하다.

이처럼 여당의 강력한 추진과 야당의 반대가 사사건건 부딪치며 진행된 각종 논란은 그 과정 상 나타난 절차적 문제와 정책 자체의 정당성·합리성에 대한 의문 탓에 보는 이를 씁쓸하게 한다.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은 녹색과 성장의 모순을 그리며 지속가능한 발전 논의를 저버렸다. 4대강 사업과 함께 문화, 역사, 생태를 강조하는 관광 산업 발전은 상업·숙박 시설 대량 유치를 중심으로 정부가 제작 중인 또 다른 아이러니의 미학이다.

남은 것은 지표상의 ‘발전’에 매달리며 깊은 고민 없이 내뱉어진 랜드마크 정책들뿐이다. 그 랜드마크가 현 정부에 훗날 어떤 랜드마크를 심어줄지에 대한 고민조차 없어 더 가볍게 느껴진다. 그래서 정부가 강력히 밀어붙이는 정책, 국회 최대 쟁점으로 부상한 현안이 사람들에게 주는 허탈함이 더욱 씁쓰레한 웃음을 짓게 한다.

지난 20일(금)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취업 후 학자금 상환 제도’는 반값 등록금 공약 대신 등록금 후불제의 일환으로 제시된 것이지만 지금보다도 더 많은 문제점이 나타난다는 지적만 제기됐다. 그마저 일부 정당과 일부 언론이 관심을 보인 결과다. 결정적으로 ‘등록금 상한제’ 내용을 담은 고등교육법 개정안은 여전히 국회 표류 중이다.

대학 등록금 문제뿐 아니라 민생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각종 현안 중 관심을 받지 못하고 표류하는 안건은 수두룩하다. 관심을 가지고 개정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더 많을 것이다. 떠들썩한 이슈들에 묻혀 조용히 발표된 정부 정책의 불합리함에 불만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그만큼 힘을 잃어 간다.

정쟁보다 민생. 매번 반복되는 말이 지겹다. ‘정쟁을 위한 정치’를 연상시키는 모습을 보지 않는 것이 어려워 답답하다. 교과서 속 국회와 정부가 현실 속의 그것과 너무나 달라 안타깝다. 현재 주요 정치 이슈가 다른 문제들을 뒤로 미루며 국론 분열을 야기하고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우선순위로 다뤄질 사안인지 묻는 말에 대한 답이 공허해 씁쓸하다.

‘막장’ 드라마는 높은 시청률을 노려 그 맥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왔다지만 ‘막장’ 정치는 대체 무엇을 노려 이어지는 것일까.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