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변화하는 세계질서
G20개최국으로 한국위상 높아져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중재자로
새로운 정책의제 제시해야

권혁주 교수
행정대학원
지난 2008년 9월 미국 주택금융 전문회사인 패니메이(Fannie Mae)와 프레디맥(Fredie Mac)의 부실과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가 이제는 조금 정리된 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잠재적 위험이 상존하기 때문에 출구전략을 실시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많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봐도 놀란다고 10년 전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한 가운데서 사회, 경제적 희생을 경험한 한국으로서는 이번 금융위기의 불똥이 튈까봐 가슴졸였다. 더욱이 지난해 국내 경제 상황은 불안정했다. 원유가의 급등, 각종 원자재 가격 상승, 원/달러 환율 상승 등 조마조마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한 우리의 주력 수출시장인 미국과 유럽의 소비위축으로 인해 한국의 수출주도형 경제구조가 갖는 취약성을 지적하는 의견도 분분했다.

그러나 다행히 주요 국가들이 정부재정을 통해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고, 신속한 국제공조를 통해 1920년대 대공황과 같은 경제위기는 오지 않았다. 한국도 지난 경제위기와 같은 사회경제적 혼란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로 인해 세계경제 질서는 중대한 변화를 맞았다. 1990년대 동구 공산진영의 몰락으로 성립한 미국 중심의 단일 헤게모니와 이를 정치, 경제적으로 뒷받침하는 G7 및 IMF·세계은행 체제는 세계의 경제적 현안을 조정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데 큰 한계에 부딪혔다. 며칠전 미·중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호무역주의를 경계하라는 따가운 훈수를 했다. 10여 년 전 클린턴 대통령이 세계 무역자유화를 외치며, 중국의 인권문제를 지적하던 시절과 대비하면 상전벽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해 중국, 인도, 브라질, 남아공 등의 신흥개발도상국가와  기존의 G7국가로 구성된 G20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2010년 11월에는 G20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린다. G20에 속한 한국, 일본, 중국 세 나라의 경제규모가 북미와 유럽의 경제를 능가하는 세계 최대경제권으로 부상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G20정상회의 서울 개최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G20정상회의의 개최국으로서 한국 정부가 제시할 정책의제가 무엇일까 궁금하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행사장소를 제공하고 회의운영만 잘 하는 것으로는 G20정상회의 서울개최의 의의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G20의 최대 현안은 이번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는 금융부분의 무분별한 투기성 위험투자와 국제자본의 단기성 이동을 적절히 규제하고 여기서 야기될 부정적 효과를 적절히 통제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경제위기로 인해 가중되는 청년실업, 관심 밖으로 밀려난 개발도상국의 빈곤, 인구 노령화, 노동의 국제적 이동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고민도 의제로 다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세계 경제질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정책구상은 무엇일까? 수출주도형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으로서는 새로운 경제질서를 고려함에 있어 미국, 유럽 등과 경제적 이해를 같이 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전쟁과 빈곤을 극복한 역사적 경험, 향후 경제적 상호관계 등을 고려해 개발도상국과 입장을 같이 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새롭게 대두되는 세계질서에 한국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개발도상국이 한국에 갖는 이러한 기대다. 이런 이유로 과거처럼 주어진 틀에 최대한 적응하는 방식으로 한국의 입장을 정할 수는 없게 됐다. 이제 세계질서의 추종자(Follower)가 아닌 창조자(Shaper)로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중재자로서, 정책적 구상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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