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문화접변지 이태원
삶과 역사를 지우는 재개발은
다양한 문화의 자양분을
단순한 논리로 재정비하는 것

송준규
인류학과 석사과정
나는 요즘 이태원에서 현장연구(fieldwork)를 하는 중이다. 이전에도 가끔 와서 이곳의 분위기를 즐겼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이곳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질문거리도 그만큼 더 생겨나고 있다.
이태원의 모습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해밀튼호텔쇼핑센터 옥상 수영장에서 클럽DJ 비트에 ‘비키니’들이 춤추고 있고, 그 어깨 뒤로 보이는 이슬람 사원 앞에서는 ‘히잡(hijab)’을 두른 무슬림 여성들과 그 가족들이 무슬림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다. 이 ‘이슬람 거리’와 나란히 놓여있는 옆 골목은 게이들의 가게들이 밀집돼 있는 ‘게이 힐’이다. 또 그 바로 옆 골목은 미군들을 상대로 하는 ‘텍사스 촌’의 가게들이 지금까지 영업을 하고 있다. 비키니와 히잡, 게이와 ‘19세 출입금지구역’이 섞여있는 셈이다. 그 밖에도 트렌스젠더 클럽, 아프리카 미용실과 레스토랑들, 유럽과 남미 음식점들까지 이태원에 엉키고 섞여있는 것들을 나열하자면 지면이 부족할 따름이다.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이태원의 이런 모습들. 이를 용산 미군기지 맞은편의 기지촌으로만 생각하기에는 무언가 놓치는 점이 많은 듯하다. 이태원은 예전에도 문화접변지대였다. 조선시대 한양에 들어가는 4개의 관문 중 하나였던 이태원은 여행자와 외국인이 많이 왕래하는 탓에, 색주가(色酒家)가 분포해 있고 각종 내외물품이 교역되는 작은 마을이었다고 한다. 또한 이태원 주변은 외국군의 주둔지이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몽고군이,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는 왜군, 임오군란 때는 청군이 이 일대에 주둔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군 병영기지 주변으로 비포장 도로가 생기고,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그 길에 아스팔트를 깔면서 지역이 커지게 됐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이태원은 관광, 쇼핑, 유흥으로 크게 번성했지만, 미군의 수요가 줄어들자 상권이 약화됐다. 그 사이 한국사회에서 이질적이라 불릴만한 문화들이 틈입을 하게 됐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곳도 곧 재개발이 이뤄질 예정이다. 미군기지가 떠난 자리에는 용산공원이 들어설 계획이고, 그 주변 거주지에는 한남 뉴타운 재개발이 시행될 예정이다. 그래서 ‘서울의 센트럴파크 옆 동네’로 바뀔 징조들이 이태원 곳곳에서 보인다. 이태원 양 옆으로도 이러한 상징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태원 동쪽에는 용산행정타운이 그 주변 동네와는 어울리지 않는 큰 규모로 세워지고 있으며, 이태원 서쪽의 리움(Leeum) 주변으로는 삼성그룹이 땅을 사모으고 있다. 이는 마치 이 동네가 ‘큰 규모를 갖춘 비싼 동네’로 바뀔 것을 예고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곳에 틈입했던 복잡하게 얽힌 문화들도 ‘재정리’ 되는 건 아닐까? 비싼 임대료와 행정관료의 통제에 따라 무엇이 남고 무엇이 떠날지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는 이태원에서 삶의 역사를 외쳐보고 싶다. 서울의 문화적 접변지역인 이곳에서, 자연스레 이질적인 소수의 문화가 틈입하고 정착하고 몇몇은 커뮤니티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이 지닌 ‘작은 문화’들은 이제 각자의 ‘작은 역사’들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삶의 역사를 ‘존중’해주는 도시개발은 불가능한 것인가? 켜켜이 엉키고 쌓이는 서울의 ‘다양한 문화의 자양분’을 단순한 논리로 ‘재정비’ 해야 하는가? 나는 서울이 ‘삶과 역사를 지우는 도시’에서 ‘삶과 역사를 북돋아주는 도시’로 바뀌기를 진지하게 희망한다. 그리고 무기력하게 연구실로 돌아오는 발걸음에서 ‘이곳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하는 연구의 측면과 ‘저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하는 참여의 측면을 함께 고민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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