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무쌍 인플루엔자 따라잡기
변화무쌍 인플루엔자 따라잡기
  • 김빈나 기자
  • 승인 2009.11.2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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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동향] 인플루엔자 연구

신종플루와 조류독감의 원인 바이러스는 모두 인플루엔자A
항원 변이 발생 가능성 커 새로운 변종 등장 가능성 주의해야

그래픽: 유다예 기자 dada@snu.kr

지난 4월부터 전 국민의 입에 쉴 새 없이 오르내렸던 신종플루의 공식명칭은 ‘신종인플루엔자A(H1N1)’다. 지난해 초여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조류독감도 ‘조류인플루엔자A(H5N1)’라는 비슷한 이름을 갖고 있다. 여기서 인플루엔자(Influenza)는 영어 ‘influence’와 같은 뜻의 이탈리아어다. 1743년 이탈리아에서 맹위를 떨친 감기가 ‘influenza di freddo(추위의 영향)’라 불린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암호처럼 생긴 ‘H1N1’에는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을까?

◇인플루엔자A 바이러스의 특수병기, HA와 NA

인플루엔자가 흔히 독감으로 불린다고 해서 이를 ‘독한 감기’로 오인하면 안 된다. 감기와 독감은 원인 바이러스가 다른 별개의 질환이기 때문이다. 감기의 원인이 주로 리노바이러스와 코로나바이러스라면 독감의 원인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다. 지름 80~120nm의 구형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DNA가 아닌 RNA에 유전 정보를 기록하며 유전적 특성에 따라 인플루엔자 A, B, C로 나뉜다. 이들 중 종종 세계적 유행을 일으키는 A형 바이러스가 주요 연구 대상이며 조류독감과 신종플루의 원인 바이러스도 이 범주에 속한다.

온갖 백신과 항바이러스제의 공격에도 끄떡없는 인플루엔자A만의 특수병기는 바로 빈번한 ‘항원 변이’다. 인플루엔자A의 항원 변이는 주로 바이러스 피막에 솟은 500여개의 단백질 돌기에서 일어난다. 피막을 뒤덮은 막대기 모양의 HA(헤마글루티닌) 돌기와 버섯 모양의 NA(뉴라미니다아제) 돌기는 바이러스의 숙주 세포 침투와 증식 후 방출을 돕는다. 이러한 HA와 NA에서 다양한 변이가 보고되는 가운데 현재까지 HA는 16종, NA는 9종 변이가 발견됐다. 신종플루 원인 바이러스의 공식 명칭 ‘신종인플루엔자A(H1N1)’에는 HA1, NA1 돌기를 갖고 있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면역세포는 HA와 NA의 조합을 항원으로 인식하는데 현재까지 발견된 변이들만 조합해도 무려 144개의 항원조합이 가능하다. 기존 항원과 다른 HA, NA가 출현하면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에 대한 면역력이 없기 때문에 인플루엔자가 대유행 할 가능성이 크다. 가장 유력한 가능성은 다른 동물에서 병원성을 나타내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항원 변이를 통해 인간을 감염시킬 수 있는 새로운 항원조합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새에게 감염되는 조류독감을 두려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플루엔자A 바이러스는 변신의 귀재?

이번 유행이 끝난다 해도 신종플루, 조류독감 등 인플루엔자에 대한 경계심을 풀어선 안 된다. 바이러스가 다른 종은 물론 같은 종의 숙주로 이동하면서도 무궁무진하게 변이를 거듭하기 때문이다. 올해 다소 잠잠한 조류독감이 어느 날 무시무시한 변종 바이러스로 탈바꿈해 나타날 수도 있다. 서상희 교수(충남대 수의학과)는 “상기도 호흡기 공격으로 기침을 유발해 쉽게 대유행을 일으킬 수 있는 고병원성의 변종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며 “대표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와 리렌자는 고병원성 인플루엔자에 무용지물이라 피해는 상상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의 인체 감염사례는 없지만 동남아시아, 유럽 등지에서는 매년 꾸준히 감염자와 사망자가 발생하는 추세라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WHO(세계보건기구)에서는 신종인플루엔자,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한 숙주 안에서 유전자를 재조합해 변종이 등장하는 것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성백린 교수(연세대 생명공학부)는 “치사율이 매우 높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와 높은 감염성을 지닌 신종인플루엔자가 만나면 높은 치사율과 감염성을 모두 갖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될 확률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변종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가 과도하다 의견도 제기된다. 김재홍 교수(수의학과)는 “경우의 수가 매우 많은 바이러스의 변이 중에서 극히 낮은 가능성을 강조해 공포심을 조장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성백린 교수 역시 “유행성이 높은 바이러스는 독하지 않고, 독한 바이러스는 대유행의 가능성이 작다”고 밝히며 ‘빠르고 독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출현에 대한 걱정이 기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바이러스만큼이나 끈질긴 예방·치료 연구

서상희 교수는 지난 5월 세계 최초로 신종플루 백신을 개발했다. 백신 개발에는 통상 석 달이 걸리지만 서 교수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로부터 신종플루 표준 바이러스를 분양받은 지 11일 만에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이는 서 교수팀이 고병원성 조류독감 백신 개발 기술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 교수팀은 지난 6월 한 국내 제약회사와 기술이전계약을 체결했으며 이 백신은 내년 말부터 대량 생산돼 국내·외에서 안정적인 백신 공급에 이바지할 예정이다.

그러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변이 앞에 백신은 한순간에 무력화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제넥신, VGX인터 등 수많은 국내외 제약회사에서 모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해 교차면역이 가능한 ‘유니버설 백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남재환 교수(가톨릭대 생명공학부)는 “유니버설 백신은 매력적인 연구 분야인 만큼 실제로 국내외에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라면서도 “바이러스 변이 자체가 너무나 다양하고 같은 바이러스도 숙주에 따라 성질이 달라지는 만큼 백신 개발 자체가 요원하고 설사 개발돼도 일관된 효능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변종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 움직임도 활발하다.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융합연구본부에서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퇴치 효능이 있는 3종의 한국산 한약재를 선별해 한방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이 치료제는 감염 후 2~3일이 지나면 효능이 떨어지는 타미플루와 달리 효능이 상당기간 지속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세의대 생체방어연구센터는 환자의 코 점막상피세포를 배양하는 기술과 (주)제놀루션의 RNA간섭기술을 접목해 부작용과 거부반응을 최소화한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RNA간섭기술은 특정 RNA 염기서열과 일치하는 RNA 조각을 세포 내에 주입하면 이것이 특정 RNA를 인식해 파괴하는 기술이다.

한편 신종플루 유행을 계기로 인플루엔자 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질병관리본부는 인플루엔자 연구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바이러스 유전물질을 지난 2일부터 연구기관에 제공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복지부)는 재정 지원에 나선다. 보건부 관계자는 “연구 지원예산이 현재 40억원에서 내년 150억원으로 늘어날 예정”이라며 “감염을 방지하기 위한 특수시설 설치비용이 만만치 않아 어려움을 겪었던 인플루엔자 연구시설 확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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