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 부문 우수작 수상소감

박진수
사회학과 석사과정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지방의 한 소도시 영화관 구석에서 주말이면 혼자서 영화를 보곤 하던 한 소년이 있었다. 어두운 공간과 흘러가는 이미지들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마냥 좋았던 내성적인 소년일 뿐이었던 그때, ‘스크린과 나만이 대화할 수 있는 그 공간’을 결코 떠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볼만한’ 영화는 결국 청소년 관람 불가란 사실을 알게 됐고 다른 친구들보다 3년은 족히 늙어보이는 얼굴 덕분(?)에 보고 싶은 영화를 챙겨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가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영화는 나의 육안으로는 결코 인식할 수 없는 세계를 출현시킴으로써 내가 알고 있는 ‘세계의 끝’을 끊임없이 내부화시켰고 덕분에 나는 편입된 그 세계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탐색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본래 그런 존재니까. 20대 후반의 어느 날, 세르지오 레오네라는 감독과 맞닥뜨렸다.

어린 시절 <자전거 도둑>(1948)에 조연으로 잠깐 출현한 그에겐 놀랍게도(당시 유럽영화, 더구나 네오리얼리즘의 영향력이 여전하던 이탈리아에서 감독의 아들로 태어난 그에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장르에 대한 편견이 보이지 않았다. 편견 없는 인간, 그 점이 좋았다.

그는 상업성에서 기원한 영화적 장르를 버리지 않고 하나의 포맷으로 삼되, 그것을 자유롭게 비틂으로써 명민한 작가의 전략이란 어떠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각인시켰다. 그런 점에서 그는 ‘제3의 길’, 즉 유럽의 자의식 강한 예술 영화와 헐리우드의 장르적 상업 영화를 교묘히 가로지르는 그 어디쯤에 존재하길 원하는 전세계 수많은 감독들의 ‘인격적 원형’인 셈이다.

부족하나마 이 글을 통해 작가로서 감독이 폭력의 이미지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지, 특히 레오네의 영화에서 보여지던 특정한 화면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돼 고백컨대,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타인에겐 엉성한 글이 고통 그 자체였을 텐데, 설익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심사를 해주신 김영진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내게 큰 힘이 되어준 사람들, 특히 재형 선배, 찬종 선배, 그리고 건우, 성익, 인관, 승철에게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끝으로 삶의 동지인 유지에게 늘 그렇듯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박진수 사회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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