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와 의혹으로 얼룩진 총학선거
학생사회 간 '신뢰'의 문제 남겨
학생사회 존재의미 되살리려면
사건 진상 철저히 규명해야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도청 사건은 워터게이트 스캔들이다.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둘러싸고 발생한 사건이다.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호텔의 민주당 선거운동 지휘본부에 도청기를 설치한 닉슨 측 일당이 붙잡힌 것이다. 닉슨은 자신과 무관한 사건이라고 끝까지 부인했지만 1974년 도청 테이프가 공개됐고 미 하원은 탄핵결의안을 채택한다. 그는 결국 사퇴했고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임기 중 사퇴한 대통령으로 만인의 기억에 남게 됐다.

새천년 이래 서울대에서 가장 유명한 총학생회장은 황라열씨일 것이다. 2005년 「Suprise」 선본으로 선거에 뛰어든 그는 후보시절부터 돋보였다. 「Suprise」 선본의 선본원은 정후보와 부후보 2명이었다. 공약 중에는 “공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자퇴하겠다”는 ‘자퇴공약’도 있었다. 첫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으나 2위와 득표 차가 오차범위 내에 머물러 결선투표를 치렀다. 그러나 결선투표는 무산됐고, 이듬해 3월 열린 재선거의 연장투표에서 당선됐다. 그러나 그해 6월 경력조작 의혹이 불거졌다. 이를 해명하기 위한 언론사 연합 청문회가 벌어졌고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다. 전학대회 공청회에서 탄핵안이 발의됐고, 대의원 2/3 이상의 출석 및 과반 이상의 표결로 탄핵됐다. 그렇게 그는 서울대 역사상 전무후무한 탄핵된 총학생회장으로서 만인의 기억에 남게 됐다.

2009년 53대 총학생회(총학)선거는 서울대 학생들에게 위 두 사건보다 더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도청과 조작, 학생회장의 연루로 얼룩진 총학선거는 결국 재선거를 치르기로 했다. 커져가는 논란 속에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투표소를 지키던 이들과 시간을 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이들의 분노는 명백하다.

2000년대 이후 대학의 선거는 학생사회가 자신의 존재의미에 대해 던지는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1970~80년대 학생사회에는 민주화라는 시대적 사명이 있었다. 선거는 투쟁이었다. 총학생회는 민주화 투쟁의 산물이었다. 1990년대는 이전 시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 학생상은 변했고 총학 선거는 더 이상 ‘운동권 간 선거’가 아니게 됐다. 변화된 학생상에 걸맞은 총학의 대안적 모색이 이어졌다. ‘비권’, 심지어는 ‘반권’ 총학이 등장했고, 최근에는 ‘복지’ 총학이 연이어 당선됐다. 그러나 학생들의 회의와 무관심이 이어졌다. 최근 7년간 선거는 2번 무산됐고 5번 연장됐다. 파란만장한 선거사 속에서 2000년대의 학생과 학생사회는 1970~80년대 학생 사회처럼 쉽게 규정될 수 없는, 어쩌면 영원히 규정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존재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의문과 비판을 제기해 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로 학생 사회에 새로운 고민거리가 추가된 듯하다. 비리와 의혹으로 점철된 학생 사회에 신뢰를 던질 수 있겠는가하는 저차원적인 고민이다.

“오늘날 대학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학생사회 간에 신뢰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총학생회는 우선적으로 합의되기 쉬운 사안인 복지를 통해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면서, 학생사회의 존재의미를 되살려야 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52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박진혁 총학생회장은 당시 「선거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가 신뢰를 사라지게 했는가. 재선거가 성사된다 해도 학생사회의 존재의미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이번 총학 선거는 어떤 내용으로 만인에게 기억될 것인가.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다가올 시험과 방학으로 이 일이 묻혀선 안 된다. 그것만이 조금이나마 남은 학생 사회 간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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