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적인 고학력 취업난
중소기업 우선 지원으로
내수경기 탄탄하게 해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

몇 해 전부터 후배들과 마주한 술자리의 안주는 늘 취업난이다. 대기업이 선호하는 인재는 대체 누구냐는 푸념이 더는 고학력자들만의 배부른 허세로 들리지 않는다. 중소기업까지 세자면 일터가 아주 없는 건 아닐 테지만, IMF 위기 이후 노동유연화 담론이 만만찮은데다가 근간에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경제의 침체마저 가팔랐다 보니 수출이 주력인 대기업(재벌)의 노동수요가 줄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한번 따져나 보자. 이제 제법 살 만해졌다면서 고학력 혹은 대졸취업난이 소위 ‘잘 나간다는’ 나라들은 물론, 우리 옛날에 비해서도 유독 시리게 와 닿는 이유 말이다.

노동수요 측면에서는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형 성장 관행이 눈에 띈다. 상당 부분 착취에 의존한 것이었을지언정 고성장세는 고학력 노동력에 대한 대기업의 지속적 수요만은 보장했다. 민주주의와 복지에 대한 양보가 논쟁적인 대가였지만 어쨌든 세계화네 신자유주의네 하기 전까지 취업난은 대졸자와는 딴 세상 얘기였다. 하지만 사정이 변했다. 전 세계적 경쟁의 와중에 자본의 노골적인 비용절감에 대한 고집은 고용 없는 성장구조를 안착시켰고, 여기에 대외적 한파라도 얻어맞게 될 땐 조금이라도 채용을 하겠다 나서는 재벌에 되레 감사해야 할 지경이다. 이젠 일자리 창출마저 신통찮다만 수출주도 성장이 숫자놀음엔 그래도 손쉬운 법이기에 보수적인 정부는 신나서, 반쯤 진보적이던 정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재벌과 그들의 수출에 목을 맨다. 산업양극화는 극복하자면서 내수시장이 작다는 고전적인 변명에 중소기업 지원은 이내 뒷전으로 제쳐지기 일쑤다.

웃기는 건 내수가 약한 게 꼭 인구가 적어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취약한 복지체제가 유효수요를 잠식해왔던 건 어제오늘 얘기도 아니지만 가난하던 시절에는 그랬다 치자. 그렇잖아도 빡빡한 사회지출에다 취업난에 고실업까지 겹쳐진 마당에 내수를 겨냥한 중소기업이 성장하긴 애초부터 글렀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졸자조차 제대로 못 챙기는 대기업 수출 늘리자고 환율방어에만 돈을 써대니, 취업난은 별반 나아질 것도 없는데 잠재력 있는 중소기업을 주저앉힌 채 소비마저 구축(驅逐)하는 악순환만 이어진다. 그러다 한 번씩 세계경제가 호황이라도 맞으면 그 정부는 성장률 대박까진 몰라도 운 나쁜 편은 아니다.

노동공급의 측면 역시 제법 한몫은 한다. 대졸자, 그중에서도 고학력자일수록 중소기업에 취직할 의사는 여전히 없어 보인다. 정부 측은 인재를 보유치 못했단 이유만으로도 중소기업 지원을 못마땅하게 인식하는데, 잠재력 있다는 중소기업조차 가능성이 낮은 마당에 아예 선택지에서 중소기업을 배제해버리는 고학력 대졸자의 인식은 마치 동전의 양면이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 같다. 그나마 좀 클 만하면 중소산업 부문이라도 접수하길 마다치 않는 대기업들이 수두룩하니 이른바 명문대를 졸업하고 중소기업 하나 잘 일궈보겠다 꿈을 꾸는 건 시기상조일지 모른다.             

늦었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가 경제의 흥망을 더는 대외조건이라는 운에 맡겨놓지 않으려면 말이다. 단기적 비용에 대한 감수는 정부와 국민 모두의 몫이다. 기술혁신 및 인적자원관리만 받쳐주면 고학력 대졸자의 인식변화도 없으리란 법은 없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중소기업은 중소기업대로 각기 넘치지 않는 노동공급량을 흡수하면 그뿐이다. 물론 여기엔 재벌의 얄미운 다각화 행태에 대한 규제가 전제돼야 한다. 잘만 된다면 중소기업 생산성의 향상으로 실업은 줄고 복지는 확대될 터, 우리는 그렇게 그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내수확장의 선순환적 축적구조를 향해 첫발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선우
정치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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