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기 시작했다
김민정 지음┃문학과 지성사┃132쪽┃7천원
‘나 홀로’ 읊조리던 그녀가 일상과 주변에 대해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첫 시집『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열림원, 2005)에서 음울한 죽음의 세계를 기괴한 언어로 노래했던 김민정 시인이 두 번째 시집으로 5년 만에 돌아왔다. 올해 등단 10년이 되는 그는 튀는 발상의 파격적인 시로 황병승, 김경주 시인 등과 함께 문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지난 12월 출간된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문학과 지성사, 2009)는 전작보다 타인을 향한 시야는 더 넓어지고 분위기는 한층 가벼워졌다.

그렇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그의 시에 더 손쉽게 다가갈 수 있을까. 친구, 학교생활, 숨바꼭질 등과 같은 친숙한 소재로 전작의 ‘죽음과 악몽의 이미지’를 상당히 탈피했음에도 여전히 그의 시는 가볍지만은 않다. 일상적 소재를 빌렸으나 그동안 쉽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남성 권력, 속물적 종교, 일상의 부조리 등의 무거운 이야기를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외면해온 일상의 어두운 진실들을 끄집어내기에 그의 시는 통쾌하다. 특히 김민정 특유의 대담함은 ‘오빠는 식염수 대신 정액으로 소독을 해준다고 싸대고 앉았는데 (···) 에그 철딱서니야 믿긴 뭘 자꾸 믿으라는 거야’(「오빠라는 이름의 오바」)처럼 성(性)과 사랑에 관련된 소재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죽음에 골몰했던 그가 5년 전과 달리 이렇듯 과감한 발상의 범위를 일상으로 넓힌 것은 시와 시인 자신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민정철학관이나 김민정머리방처럼 개나 소나 하게 잡스러운 내 간판은 머잖아 또 깨질 이름이니 부모여, 부디 이제 더는 시인 김민정에 기대를 마오’(「정현종 탁구교실」) 처럼 시인으로서 일상이 된 고민이 '시인 김민정'에 대한 고민은 물론 그의 주변까지 돌아보는 시작이 된 것이다.

그러나 시의 표현 방식은 여전히 전작 못지않게 파격적이다. 김민정만의 거침없는 언어구사 방식은 대담한 내용을 담아내기에 제격이다. ‘시적 언어-범속한 언어’의 경계를 허무는 비속어와 육두문자, 「남편이라는 이름의 남의 편」이라는 제목처럼 기발한 언어유희는 가려운 부위를 더 시원하게 긁어준다. 다만 어두운 문제를 신랄하게 꼬집을 뿐 근본적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기에 그의 시 말미는 대부분 쓸쓸하다. ‘남편이라는 이름의 남의 편’을 통쾌하게 비틀던 화자는 “속고 속이고 속으면 속 편할 레퍼토리, 우리는 이제 이렇게 됐다”는 독백으로 덤덤하게 끝맺는다.

덮어두었던 일상의 부조리와 상처를 미화하지 않고 특유의 용감한 화법으로 전달하기에 그의 시는 고상한 방식의 시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난색을 보이는 이도 있겠지만 이것은 상처를 보듬는 그만의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시집에서는 어두운 진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야가 ‘시인 김민정’과 그 주변의 일상으로 확장됐다. 방식은 여전히 거칠지만 그의 시선은 따뜻하다. 이 시집을 통해 시인 김민정의 이상하고 아프고 아름다운 속내를 “처음, 느끼기” 시작할 독자들도 많아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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