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영화계지원사업 선정 기준을 놓고 독립영화계가 소란스럽다. 존 다우닝, 디디 할렉 등 국외 유명 미디어운동가들이 나서 미디액트 구명을 위한 탄원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운영하는 고전·예술영화 상영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선 관객들이 독립영화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서명운동과 모금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외에도 지난  18일에는 155인의 독립영화감독들이 나서 새로운 독립영화전용관에선 자신의 영화를 상영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도대체 독립영화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논란이 가실 날 없는 독립영화계, 무슨 일 있었나

현재 영화계에선 지난달 완료된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사업 선정 공모 심사를 두고 ‘공모(公募)가 아니라 공모(共謀) 아니냐’는 뒷말이 돌고 있다.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의 사업권을 각각 얻어낸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한다협)와 시민영상문화기구는 공모 발표 한 달 전에 급조된 단체로 운영능력과 사업 적합성에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특히 공모에 지원한 단체 중에는 지난 8년간 영상미디어센터를 운영하며 성과를 인정 받은 미디액트가 구성한 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도 있었지만 신생단체인 시민영상문화기구가 1등을 차지해 선정 기준이 공정치 않다는 의혹을 증폭시켰다. 여기에 민주당 최문순 의원이 “1차 심사에서 최하위 평가를 받은 한다협과 시민영상문화기구가 2차 심사 때 1차 때와 유사한 계획서를 제출하고도 1등을 차지했다”며 “특히 1차심사 때 탈락한 문화미래포럼의 운영진으로 구성된 시민영상문화기구는 명칭만 바뀌었을 뿐 그 본질은 그대로다”고 밝히면서 심사 공정성에 대한 논란은 더욱 불거졌다.

이에 해명에 나선 영진위 조희문 위원장은 “심사과정에는 문제가 없다”며 “지난해 한국독립영화협회(한독협)가 위원회 보조금을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는 감사 결과가 한독협이 위탁운영을 맡아온 미디액트의 심사 결정에 영향을 줬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어 그는 미디액트가 구성한 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한교협)는 한독협과 무관한 신생단체로 시민영상문화기구와 동일한 조건으로 심사했다”는 앞선 말과 모순된 발언을 해 말 돌리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화계에 찾아온 민주주의의 위기

계속되는 공정성 논란에 대해 이번 공모 심사의 목적은 독립영화계의 좌파 추출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번 심사에서 선정된 한다협의 최공재 대표는 그간 보수 매체에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시위를 비판하는 글을 기고하는 등의 활동을 해왔으며 시민영상기구의 장원재 이사장 역시 뉴라이트 연합 소속이다. 또 최 대표는 시민영상문화기구의 설립자며 장 대표는 한다협의 자문위원을 겸하고 있다. 이에 이번 사업 선정 공모는 독립영화 진흥기관의 운영자를 정치적 코드인사로  교체하기 위한 수순에 불과했다는 지적이다.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지현 팀장은 “이번 공모제는 현 정부의 입맛에 맞춰 진보성향의 현 운영진을 탈락시키고 친 정부적 인사를 등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기존 영상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전용관이 갖고 있던 ‘영화를 통해 사회에 대한 자유로운 의사를 표현하는 곳’이라는 사회적 의미가 완전히 무시됐다”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촛불 집회에 관여한 독립영화제 단체들은 영진위의 지원 사업 심사에서  탈락함에 따라 독립영화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다. 인디 포럼 이송희일 대표는 “이번 공모심사 논란뿐 아니라 그동안 영진위가 보여준 편향된 지원은 독립영화의 표현의 자유와 운영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영진위의 정책안 중 ‘기존의 정책을 공모제로 전환하고 1년의 운영 약정 기간을 두고 매년 사업 수행에 대해 평가를 할 것’이라는 안에 대해서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위탁제에서 공모제로 바뀐 독립영화전용상영관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대신 폐관을 택한 인디스페이스의 원승환 소장은 “수행 평가는 그렇다 쳐도 독립영화 개발 및 진흥정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돼야 한다”며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단기정책은 사업 연속성과 정책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위기의 독립영화, 무엇이 필요한가

공모심사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28일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의 시네마테크 전용관 지원사업 계약이 만료된 시점에서 영진위가 다시 한 번 공모심사를 추진해 독립영화계에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시네마테크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외국은 독립영화 운영 사업에 80%까지 지원하지만 문화적 지식이 뒤처진 영진위에게 이만큼은 기대하지도 않는다”며 “적어도 시네마테크는 2002년부터 민간사업으로 운영된 독립적 단체며 영진위는 일부 운영자금만을 지원해왔으므로 공모를 열 자격이 없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허경 활동가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지금의 영진위는 예술계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채택된 ‘팔 길이만큼의 거리를 두고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보단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채우는 ‘어깨동무 원칙’을 지키고 있다”며 “영진위는 이번 공모의 당위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독립영화계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이송희일 감독은 “문체부와 영진위의 독립영화를 훼손하려는 시도에 맞서되 더는 이들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한 자생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디액트 김명준 소장은 “최근 들어 외부적 간섭때문에 점점 독립영화를 상영할 공간이 사라져가고 있는 실정”이라며 “영화를 좋아하는 시민들이 뜻을 모아 시네마테크를 만들었던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열정을 갖고 영화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공간 확충을 도모해본다면 독립영화계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독립영화 사업 선정의 정당성과 자율성 침해에 논란이 끊이지 않는 지금. 각기 다른 길을 가는 영진위와 독립영화계의  행보가 독립영화에 어떤 영향을 불러일으킬지 관심이 집중된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