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보면 교수들이건 학생들이건 간에 어떤 면에서는 학기 중보다 방학 동안 오히려 더 바쁜 듯하다. 교수들은 밀렸던 연구와 각종 국외활동에 분주하고 학생들도 계절학기 수강이나 어학 공부, 아르바이트 등 각자 사정에 따라 분주하다. 그래서 방학은 배움에서 놓여난다는 뜻이 아니라 놓여나서 배운다는 뜻이라는 풀이도 나왔나 보다.

그래도 아무튼 놓여남은 좋은 것임이 틀림없다. 방학이 끝날 즈음이면 교수들도 또 학생들도 은근히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우울해지는 것은 역시 방학이 개강보다는 분명히 좋기 때문일 터이다. 개강을 앞두고 발생하는 그런 온갖 신경성 증상을 뭉뚱그려 개강증후군이라고 부른다. 물론 정식 의학용어는 아니고 교수휴게실에서만 사용되는 용어이다.

가만히 관찰해보면, 학생들은 모르겠거니와 교수들의 경우 개강증후군이 대개 1학기 때보다 2학기 때 좀 더 심하지 않은가 싶다. 그것은 봄학기에는 가을학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일 터이다. 캠퍼스에 새 가족이 담뿍 들어온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캠퍼스 구석구석 모든 것에 새로워하며 우왕좌왕하는 새내기들, 그네들 밥 사주느라 뒤로는 울상이어도 앞으로는 미소를 흘려대는 선배들이 어울려 콸콸 솟는 활력으로 매화보다 앞서 봄을 꽃피운다.

개강증후군이 절정에 이르는 시점이지만 새삼 그렇게 사람 꽃들이 활짝 피어오를 풍경을 떠올리니 잔뜩 날카롭게 곤두섰던 신경이 스르르 가라앉는다. 그러고 보면 매년 꼬박꼬박 두 번씩 방학의 끝을 아쉬워하며 개강증후군에 시달림에도 또 한편으로는 개강의 즐거움과 설렘도 있으니 선생이라는 직업이 꽤나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년 방년 만 18살짜리 새로운 생명들을 어김없이 맞이해 가르치고 가꾸어내는 직업이니까 말이다. 탄생-죽음-재생을 무한히 반복하는 시간의 순환과정을 자연이 아니라 인간사에서 이처럼 철저하게 경험하는 직업이 어디 또 따로 있겠는가 싶다. 비록 나 자신은 그 순환의 바퀴가 한 번 돌 때마다 팍팍 노쇠해진다 하지만 그거야 생명체라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고, 세상의 끝없는 재생과 젊음을 바로 그 현장에서 생생하게 감각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복이다.

어리바리하던 캠퍼스의 갓난아기들이 조금씩 자라나며 점차 제 힘으로 살림살이를 꾸려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꽤 큰 즐거움이다. 사람이 여느 동물과 달리 문화, 문명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선대의 경험을 학습해 자기 것으로 삼고 이를 바탕으로 한발 더 나아간 경험을 개척할 수 있기 때문일 터이다. 하지만 학습한 것이 그대로 온전히 제 것이 되지는 않는 법이다. 하기는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인생이 재미없어질 것이다. 20대 청년이 부모님이나 선생님 세대의 조언을 그대로 따르며 살 수 있다면 겉늙어 재미없는 인생이 된다. 먼저 살아본 경험으로 얻은 지혜를 아무리 고구정녕(苦口丁寧) 일러주어도, 듣는 당자 또한 그 말씀이 옳다는 것을 아무리 명심하여도, 젊은이는 그동안 모든 세대가 젊을 때 겪은 시행착오들을 되풀이해 직접 겪어봐야지만 진정 인생의 젊은 시기를 살아낸 셈이 된다. 올해에도 나는 새내기들이 봄을 꽃피우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세상의 재생력을 감득하고, 때론 넘어져 무릎을 깨뜨려 우는 모습에도 미소를 터뜨리며 개강증후군을 다스린다.

윤원철 교수 종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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