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아시아의 지식인

고정된 권역적 구분과 경제 협력 중심의 권역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
아시아 일방주의 빠지지 않고 내부의 차이도 존중해

스피박은 에드워드 사이드, 호미 바바 등과 함께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을 만들어낸 학자 중 한 사람이다. 서구 식민주의에 맞서 탈식민의 이론적 지평과 방법론을 탐색해온 포스트식민주의는 탈식민화의 주체들이 거주하는 공간을 제3세계라는 용어로 지칭한다. 최근 이 지정학적 공간은 남반구로, 또 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라는 세 대륙의 이름으로 대체되는 추세다. 이와 같은  ‘탈식민’의 대륙 사유는 현 지구화 시대의 빈곤과 전쟁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의제를 갖고 스피박은 자신의 출신 대륙인 아시아를  『다른 여러 아시아들』에서 집중 탐색하고 있다. 그동안 아시아는 유럽 대륙의 사유에 의해, 또 미국의 아시아 프로젝트에 의해 서구 식민주의의 대상으로 정의돼 왔다. 그런 만큼 스피박은 이제는 서구인들의 아시아가 아닌 우리의 아시아를 상상하는 훈련을 하자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상은 인도, 벵골을 중심으로 한 남아시아 모델의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을 수정하고 확장하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그 작업에서 아시아의 지정학적 범위는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서아시아, 중앙아시아라는 권역*들로 넓혀진다. 

스피박의 아시아 상상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 주어져 있는 고정된 정체성에 따른 권역적 구분에 맞서고 경제 협력 중심의 권역화(regionalization)를 넘어서야 한다는 점이다. 요즈음 경쟁적으로 진행 중인 경제적 권역화는 자본주의 지구화의 획일성에 점차 양도되고 있을 뿐, 광범위한 기초를 갖는 문화와 기본 인식 상의 변화를 유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변화를 고무하는 이론적 실천은 아시아를 우리 자신의 권역적 정체성으로 단일화하거나 그 정체성에 환원시키려고 하기보다 그 정체성을 경유해 하나의 정치적 공동체이자 다원성(plurality)을 지닌 대륙으로 생각하는 이론적 지평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아시아 상상은 다원적, 상상적, 문화적인 것인데, 배타적인 아시아 정치를 벗어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갖는 지역들을 연결하고 비교하되 정치적인 구조와 문학적인 결을 동시에 읽어내는 훈련을 요구한다.

스피박이 제안하는 아시아 문화 읽기는 1955년 반둥회의에서 표명된 ‘반식민’ 대륙 사유와, 또 현재의 메트로폴리탄 지구적 사유와는 다른 사유의 틀에서 실행된다. 먼저 ‘반식민’ 대륙 사유는 지역의 종족적(ethnic) 정체성을 바탕으로 하는 획일적인 반식민 민족주의에 갇혀 아시아 지역 중심의 토착주의를 가져왔다. 한편 메트로폴리탄 지구적 사유는 미국 중심적인 논리를 위해 손쉬운 다종족적(multi-ethnic) 다문화주의로써 초국가적 디아스포라 헤게모니를 파급시키며, 또한 북반구(North) 중심의 지구적 거버넌스(global governance)에 기반을 둔 국제적 시민사회의 정당성을 유포하는 데 급급한 실정이다. 이에 불만을 느끼면서 민족주의와 지구주의 둘 다를 빗금 치는 비판적인 권역주의(critical regionalism)의 아시아 상상은 아시아 일방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아시아 내부의 차이들을 상상하고 존중할 뿐만 아니라 배우는 과제를 제기한다.

스피박이 비판적인 권역주의에 따른 아시아 연구의 일환으로 특별한 관심을 두고 논의하는 권역은 중앙아시아인데 그중에서 아르메니아와 아프가니스탄을 『다른 여러 아시아들』에서 비중 있게 다룬다. 이슬람을 배제해온 기존 아시아 지역연구는 미국의 아시아 프로젝트라는 맥락에서 수행된 것이었다. 이에 맞서 스피박은 서구에 의해 악마화된 이슬람을 자족적이고 획일적인 예외로서가 아니라, ‘아시아’의 복수성에 입장하기 위한 또 다른 역사적 항목으로 대하는 수정된 접근법을 주장한다.

예컨대 <뉴욕 타임스>에 실린, 공개 처형되는 아프가니스탄의 마지막 공산주의 대통령 나지불라의 사진으로 시작되는 스피박의 논의는 안정된 국가를 수립하고자 거대한 제국주의 권력 게임 주자들의 역할을 비판적으로 독해했던 나지불라의 ‘위로부터의’ 여정을 읽어낸다. 아프가니스탄은 인도로 가는 통로라서 러시아와 영국 사이의 제국 게임에 오랫동안 저당 잡혀 왔지만 식민지는 아니었다. 나지불라는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에 맞서고 아프간 왕정에 맞서 개혁을 시도했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지구화 논리의 작동에 의해 실패한다. 이 실패를 거울삼아 스피박은 우리더러 나지불라의 유령을 출몰하게 하여 그에게 하위주체들, 여성들을 상기시킴으로써 그의 노력에 ‘아래로부터’ 간섭하자고 촉구한다. 스피박의 통찰에서 더 나아가 한국의 지식인들은 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 지역들을 지구적으로 결속시키는 새로운 지구지역(glocal) 행동의 시야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태혜숙 교수
대구가톨릭대 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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