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과학인문학

군맹평상(群盲評象). 소경들은 왜 코끼리를 만지고도 코끼리라 답하지 못했을까. 다리, 몸통, 꼬리 모두 코끼리의 일부일진대 이것들이 전혀 다른 것이라는 편견이 진리에 이르는 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식처럼 여기는 과학과 문학의 배타성이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같다며 도전장을 내민 책이 있다.  『과학인문학』은 과학과 문학이 본질적으로 같다며 감긴 눈을 뜨게 한다.

물리학자와 시인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정체성을 모두 가진 저자의 경력은 특이하다. 미시 세계와 일상을 시로 엮은 전작 『과속방지턱을 베고 눕다』에서 그는 과학용어를 말랑말랑한 언어로 풀어쓰는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이번에 저자는 질량·관찰자·상수·시간·대칭·해석과 같은 물리학 개념을 에세이 형식으로 대중에게 쉽고 재미나게 전달한다. 

과학을 풀어내는 언어는 수학이라는 통념이 진리처럼 군림해온 탓에 물리학을 시로 풀어쓴 저자의 시도는 우리에게 다소 낯설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과학과 문학은 표현 방법이 다를 뿐 둘 다 인생과 우주에 대한 인간의 고민으로 본질이 같다. 의식을 구성하는 이성과 감성이 상보적 관계이듯 이성이 관장하는 과학과 감성이 담당하는 문학도 배타적 분야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과 문학의 호환 및 융합은 인생을 완전하게 보기위해 필수적이다.

저자는 각 장의 에피소드에서 물리학 개념과 인문학적 사유를 대등하게 연결짓는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과학적 개념과 일상의 고민이 한 테두리 안에서 공존함을 알게 된다. 일례로 실연의 충격으로 절벽에서 뛰어내린 친구가 등장한다. 몸무게가 두 배인 내가 뒤이어 뛰어내리면 그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무게가 두 배면 중력질량이 늘어나지만 그만큼 가만히 있으려는 관성질량도 늘어나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이렇게 여섯 가지 물리학 개념을 넘나들던 저자는 과학과 문학의 통섭을 강조하며 끝맺는다.

책은 물리학 개념들을 인간사와 연결해 쉽게 전달하는 ‘과학에세이’ 시리즈의 2탄이다. 1탄  『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대학신문』 2009년 5월 10일자)가 물리학을 사회현상과 접목했다면 『과학인문학』에서는 인문학적 사유와 삶의 철학이 화두다. 그간 과학과 인문학을 융합하려는 노력은 많았지만 인문학은 과학을 쉽게 풀어쓰는 도구 역할을 하는 데 그쳤다. 이 책은 인문학의 지위를 과학과 대등하게 끌어올려 인생과 우주를 통찰하는 한 축으로 본다.

“물리학자도 하늘의 별을 보며 감상을 떠올릴 줄 안다”던 리처드 파인만의 말처럼 님스, 업다이크 등의 여러 학자가 과학에서 느낀 아름다움을 시로 옮기려 시도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이런 시도를 주로 번역서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멋진 시를 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찬사를 보낸 저자의 내공은 더욱 빛을 발한다.

과학인문학
김병호 지음┃글항아리┃286쪽┃1만3천5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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