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관용

“나를 덜 사랑하면서 남을 더 사랑한다.” 관용은 타자에 대한 포용을 강조하는 현대 다문화사회에서 개인의 필수 자질로 여겨진다. 8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익숙해진 ‘똘레랑스’는 무조건적인 칭송의 대상이다. 그런데 미국의 정치학자 웬디 브라운은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에서 관용에 딴죽을 건다.

브라운은 절대적으로 훌륭한 가치라고 여겨졌던 관용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를 위해 그는 “낯선 요소가 주인·숙주를 파괴하지 않는 한에서 공존 가능한 한계”라는 관용의 사전적 정의를 활용한다. 관용을 베푸는 주체는 ‘자신이 안전을 보장받는 한도’ 내에서만 대상을 관용한다. 따라서 관용은 안전을 보장받는 한도를 벗어난 대상에 대한 선제공격을 정당화한다. 이슬람 이민자에 대해 관용정책을 폈던 프랑스가 최근 이슬람 여성의 베일 착용을 금지하고 이민을 다시 제한하는 것은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허용되는 관용’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불안정한지 보여준다.

이러한 현대 관용의 이면은 어디서 생겼을까. 저자에 따르면 근대초기 종교집단 간 공존을 위해 서로 종교적 믿음을 인정하자는 관용정신이 등장했다. 그러나 현대사회로 오면서 관용은 종족·민족·섹슈얼리티 등의 영역으로 폭넓게 적용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문제는 다양해진 관용의 대상에 전제된 불평등이 더욱 심화됐다는 것이다. 현대의 종족·민족·섹슈얼리티 영역에서 힘의 상이한 분배를 묵인하는 관용이 미덕이 되면서  ‘우월한’ 집단과 ‘열등한’ 집단 사이의 불평등과 지배구조는 은폐된다. 결국 관용이 권력집단의 지배구조를 공고히 한다는 것이다.

브라운은 특히 관용담론이 21세기 서구제국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작동하는 현실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서구의 자유주의야말로 모든 국가가 반드시 지향해야 할 이념’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면서 관용 담론은 자유롭고 ‘관용적’인 서구의 도덕적 우위를 강조하고 ‘비관용적’인 비서구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했다. 저자에 따르면 부시가 이라크에 전쟁을 선포하면서 “야만에 대한 문명의 승리”를 주장한 것도 아름답게 포장된 관용 담론에 불과하다.

관용 담론은 비서구에 대한 서구의 지배는 물론 서구 내부의 지배체제들도 고착시키고 있다. 여성과 남성은 법과 정치의 영역에서 동등하지만 ‘관용’을 미덕으로 삼는 사회 영역 안에 들어오는 순간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억압은 당연시된다. 

저자가 관용을 폐기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관용 담론이 은밀하게 덮어온 지배와 착취, 불평등을 인정하고 이에 맞서는 새로운 정치적 담론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한국사회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용을 뜨겁게 외치지만 그들의 정치적,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관심은 미약하다. 결국 브라운이 폭로하는 것은 “남을 덜 사랑하고 나를 더 사랑하겠다”는 현대 관용의 위선적 실체가 아닐까.    

관용
웬디 브라운 지음┃이승철 옮김┃갈무리┃344쪽┃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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