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세계문학 사각지대]

북유럽이라고 하면 왠지 ‘제3세계’와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북유럽 문학’의 위상은 생각만큼 높지는 않다. 온·오프라인 서점가에서 ‘기타소설’로 분류되던 북유럽 문학이 이제야 고유한 지위를 얻고 있다. 2000년대 이전 북유럽 문학 시장에서는 노르웨이 극작가 입센 외에 별다른 작가의 작품을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1~2년 사이 세계문학전집 출판 붐이 일면서 일부 출판사는 작품성 있고 독특한 개성을 지닌 북유럽 문학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작품을 고르려다 보니 아직 낯선 북유럽 문학이 발굴처가 되는 것이다. 들녘출판사의 ‘일루셔니스트(illusionist) 세계의 작가’ 전집은 『이야기꾼』,『레이캬비크 101』 등 2편의 북유럽 소설을 출간했다.

오랜 기간을 거쳐 이제야 막 빛을 본 북유럽 문학의 성격은 어떨까. 재미있는 사실은 북유럽 문학의 성격이 북유럽의 자연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들녘출판사 김상진 편집과장은 북유럽 문학이 “북유럽의 춥고 척박한 폐쇄적 환경 때문에 외부와의 접촉이 드물어 내면에의 침잠이 두드러진 대신 타인과의 소통을 갈망하고 이를 섬세하게 형상화한다”고 말했다. 홍재웅 교수(한국외대 스칸디나비어과)는 북유럽문학의 특징으로 “실존문제를 탐구하는 진지함과 무거움”을 꼽았다. 또 가볍고 아름다운 이야기보다 추악하고 적나라한 인간군상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알코올 중독자, 정신병자가 주인공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국내시장에서 인기 있는  북유럽 문학은 범죄/추리소설에 치우쳐 있다. 물론 노르웨이의 범죄소설가 카린포숨, 스웨덴 작가 헤닝 만켈 등의 장르소설은 작품성 또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미추리소설이 사건의 긴장과 추리적 기법에 집중한다면 북유럽 범죄소설은 범죄자의 내면과 심리를 통해 인간의 심연, 충동 등을 탐구하기 때문이다. 권혁준 번역가는 “헤닝 만켈의 범죄소설은 겉으로는 안정된 북유럽 복지사회에서도 소외된 사람들과 사회의 균열 등 부정적 이면을 포착한 것이 특징”이라고 평했다. 

번역본 수는 점진적으로 늘고 있지만 국내 독자들이 접할 수 있는 북유럽 문학의 저변은 아직 한정적이다. 홍재웅 교수는 “출판사는 아무래도 많이 읽히는 장르소설 중심으로 소개하다 보니 북유럽문학의 정수가 되는 작품은 외면받기 쉽다”고 말했다. 또 북유럽 문학 전공자가 국내에 드물다보니 출판사는 잠재적 문학성보다는 베스트셀러 목록이나 문학상 수상 목록, 영화화된 화제작에 의존하기 쉽다. 대다수가 북유럽문학 전공자가 아닌 전문번역가의 소개나 사이트 검색을 통해 작품을 접하기 때문이다.

북유럽 문학의 번역 현실도 열악한 편이다. 언어의 고유성, 뉘앙스 등을 살리려면 작품이 쓰인 해당 언어의 전공자에게 번역을 맡기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북유럽권 언어 전공자가 드물어 대부분 영어나 독일어 중역이 불가피하다. 김상진 들녘출판사 편집과장은 “독일어를 중역한 아이슬란드 소설 『레이캬비크 101』는 아이슬란드어의 우리말 표기법도 제각각이어서 번역의 어려움이 가중됐다”고 밝혔다. 

가까운 듯 멀리 있는 북유럽 문학, 정치적 사각지대에 있지 않기에 오히려  문학의 사각지대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북유럽 문학의 좁은 시야와 번역의 장벽을 넘어서려는 움직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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