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담론의 체계적 연구 토대 마련해

▲ © 그래픽: 김응창 기자

 지난 1990년대 중반 유럽통합과 나프타(NAFTA)출범을 계기로 전세계적으로 ‘지역주의’가 확산되면서, 한중일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동아시아에서도 나름대로 공통의 정체성을 추구하자는 ‘동아시아 담론’이 활발히 논의되어 왔다.

 

이번에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 유교문화권 교육연구단’이 펴낸 2권의 『동아시아 정체성을 묻는 오늘의 시각』 총서는 이런 다양한 논의들 가운데에서도 ‘동아시아의 근대성’과 관련한 지난 5년간의 연구성과를 총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동아시아 논의의 필요성에 대해 연구단 단장 임형택 교수(성균관대 한문교육과)는 “냉전 시대 이후 거세진 미국 패권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으로, 그리고 근대를 주도한 서구의 자본ㆍ기술의 논리가 제어장치를 상실한 데 대한 대안으로서 ‘동아시아학’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경호 교수(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는 “동아시아 담론이 자민족 중심의 해석이 아니라 지역공동체로서 병존해나갈 수 있는 문화를 찾아나갈 경우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상편’과 ‘여성편’ 두권으로 이뤄진 총서 중 ‘사상편’에 해당하는 『동아시아 유교문화의 새로운 지향』은 동아시아가 공유하고 있는 유교가 한중일 3국에서 개별적으로 전개되어간 과정을 각각 서술, 비교함으로써 동아시아 차원의 지역적 정체성을 추구하고자 시도한다. 송하경(성균관대ㆍ동양학과)교수는 “개인의 단독적 인격을 적극 긍정하면서도 사회와 집단을 위해 개인을 뒤로 돌리는 공자의 윤리사상은 유교문화권 내의 사회와 국가의 안정을 지탱했다”며 중국 유가의 한국적 토착화가 사회적 기능을 수행했음을 보여주었다.     

유교 문화, 동아시아 사회의 안정 기반  

한편 『동아시아와 근대, 여성의 발견』에서는 동양 여성의 전근대적 삶이 근대화를 거쳐 변모되는 과정과 함께, 단지 ‘전근대적’이라고만 치부되던 동양 여성들의 삶 속에서도 근대적 속성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고전문학작품의 사례 등을 통해 제기되고 있다. 진재교 교수(성균관대ㆍ한문교육과)는 전근대 시대의 야담 『잡기고담(雜記古談)』에서 환관의 처가 성욕을 억압하는 공간을 탈출하여 승려를 유혹해 결혼했다는 내용의 야담인 「환처」를 통해 주체적인 근대적 여성상이 당시에도 존재했음을 드러낸다.  

자민족 중심의 해석의 아닌 공존의 문화 찾아야  

그러나 이번 총서에 대해서는 “기존의 논의를 크게 벗어나는 새로운 성과가 별반 없다”는 비판도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이번 총서는 동아시아 유교문화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에 불과하다”며 “산발적으로만 이뤄졌던 논의들을 신진 연구인력들이 참신한 연구방법, 주제를 통해 집중적으로 탐구함으로써 새로운 논의를 위한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의의를 부여했다. 임형택 단장 스스로도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전통적인 유교문화의 다양한 면모를 밝히거나 그 공과를 현대적 관점에서 명확하게 조망하지 못했다”고 연구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한 만큼 앞으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동아시아 담론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동양판 오리엔탈리즘일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김 교수는 “동아시아 담론은 외부적 측면에서 동아시아를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시각이 있고 자체 내에서 동아시아의 사회ㆍ문화를 규정하는 시각이 있는데, 이 둘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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