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뒤덮은 올림픽 소식
세종시, MBC사태 뒷전으로 밀려나
국민은 여론몰이에 휘둘리지 말고
권력의 감시자란 본분 잊지 말아야

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스피드 스케이팅의 깜짝 선전, 쇼트트랙의 금메달 행진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며칠 전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한 김연아의 피겨 연기는 가히 환상적이었다는 평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온 나라가 이렇게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인데 왜 자꾸만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걸까.

언론에서는 쇼트트랙 우승부터 시작해 김연아의 신체 분석까지 각종 올림픽 관련 보도를 쏟아내고 있지만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보도 내용’이 아니라 그 언론들의 ‘보도 태도’다. 지난 1월경 ‘이대로 가면 SBS가 올림픽 전 경기를 단독 생중계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부터 이미 예상했던 바지만, 올림픽 중계를 둘러싼 여러 언론들의 보도행태는 정말 가관이다. 단독중계권을 따낸 SBS는 연일 올림픽 재방송을 내보내는 반면 KBS와 MBC는 올림픽 개막식도 단신으로 처리하면서 시청자들의 불만을 자아냈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후의 변화다. 한때는 SBS의 독점중계에 반발해 올림픽 보도를 기피했던 MBC와 KBS가 요즘 들어 연일 올림픽 관련 내용을 헤드로 싣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이정수 선수의 쇼트트랙 1500m 결승도 5번째 뉴스로 내보냈던 KBS였다. ‘SBS의 취재 제한으로 뉴스보도에 제약이 있어 뉴스 하나 이상의 제작이 불가능하다’던 MBC였다. 그랬던 KBS와 MBC가 돌연 태도를 바꿔 올림픽 소식을 9시 메인뉴스로 집중편성하기 시작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대체 어떻게 된 연유인고 하니, 정부 윗선에서 언론에 접촉해 올림픽 관련 내용을 늘려달라고 압박했단다. 실제로 청와대 이동관 홍보수석은 지난달 16일 KBS 기자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KBS 기자들에게 ‘공영방송인 KBS가 금메달 소식을 이렇게 단신으로 처리해서 되겠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설 인사차 들렀다 지나가면서 한 얘기’라는 것이 당사자들의 전언이지만 그날 오전 KBS 김인규 사장이 간부들을 심하게 질책했다거나 이후 방송3사의 언론보도가 대폭 늘어난 점으로 미뤄볼 때 단순히 ‘설 인사차’ 들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국민을 3S(Screen, Sports, Sex)에 열광시켜라!’. 전두환 시대의 모토였지만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여전히 정부는 언론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고 국민들은 스포츠에 열광하느라 사회현안에는 별 관심이 없다. 다른 때라면 벌써 1면 탑을 차지하고 남았을 세종시, MBC 사장 인사, 북한 관련 문제들은 모두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요상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정말로 스포츠를 선전하는 언론플레이로 ‘우매한’ 대중들을 ‘잘 인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물론 정부의 이러한 사고방식은 통탄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정부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미 과거 스포츠를 이용해 이명박 정부가 기사회생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여름 촛불시위 정국 때도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의 승전보가 속속 전해지면서 광우병 쇠고기 논란은 가라앉고 MB 정부의 지지율은 상승한 바 있다.

이쯤되면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에게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한번 묻겠다. 정부는 정말로 스포츠를 선전하는 언론플레이로 ‘우매한’ 대중들을 ‘잘 인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우리의 몫이다. 여기에 자신있게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근본적으로 부정부패를 막을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감시자의 역할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올림픽이 요란스러워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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