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책, 세계화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다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은 15세기 초 독일 출판인들과 서적상협회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한 것을 기원으로 2차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해 2004년 56회를 맞는다. 매년 10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열리는 도서전은 전 세계 도서저작권의 25% 정도가 사고 팔리는 저작권 거래 전문 도서전으로, 출판관계자들의 전문적인 논의와 협상이 이뤄지며 해마다 100여 개국에서 1만여 개의 출판사가 참여해 약 30만 종의 책을 전시한다.

 

한국은 1961년부터 참가해 왔으며 작년에는 115만 달러의 계약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2005년도 주빈국으로 선정돼 출판 시장을 해외로 확장하고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는 매년 주빈국에만 약 2000평에 달하는 공간을 제공하며, 주빈국들은 자국의 문화적 역량을 총동원한다. 이에 따라 한국은 2005년 국제도서전 준비를 위해 작년 12월 문화관광부에서 주빈국조직위원회를 구성했고, 도서전에 출품할 ‘한국의 책 100’을 선정해 현재 영어ㆍ불어ㆍ독어 등 6개 국어로의 번역이 진행 중이다.

 

한국, 주빈국 선정 출판 시장 해외 확장의 기회

 

그러나 도서전의 준비과정을 둘러싼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은 ‘한국의 책 100’ 선정과 그 책을 번역해 해외에서 출판하는 일이다. ‘2005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한국의 책 100 선정위원회’는 한국문학ㆍ한국사ㆍ지리ㆍ예술ㆍ아동 등 8개 분야에서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출품할 100권의 책을 선정했다. 그러나 이번에 선정된 100권 가운데 한국의 대표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고은, 이청준, 이문열, 황석영 등의 작품이 빠진 것을 두고 ‘대표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두고 지난주 각 종 일간지에서는 거장들의 작품이 빠졌을 뿐 아니라 『대승신기론 소ㆍ별기』 등 지극히 전문적인 학술서를 포함하는 등 외국인들의 가독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2005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한국의 책 100 선정위원회’ 위원장 황지우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ㆍ연극원)는 이에 대해 “‘명저 100선’보다는 한국의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책을 골랐고, 이미 번역된 책은 제외했다”고 말했다. 선정위원회의 안삼환 교수(독어독문학과) 역시  “유명작가들의 대표작들은 국제도서전에서 ‘대한민국 대표 작가관’에 따로 전시된다”며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데 반드시 필요함에도 번역이 되지 않은 책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또 안 교수는 『백자/분청사기』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김치 100가지』 등을 선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라고 설명했다.

 

서적 선정 기준 두고 논란, 졸속 번역의 우려도 있어


그러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와 예술』이나 『니체의 철학 100년』 등이 한국을 홍보하는 책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 많다. 또 문학번역원의 한 관계자는 “출판시장에서 문학작품은 비문학에 비해 수명이 길어 시장 점유 가능성이 클 뿐 아니라, 문화 홍보를 위해서도 문학작품이 가장 효과적”이라며 시장가능성을 가진 문학작품들이 선정되지 않은 것을 지적했다. 

 

또 앞으로 남은 19개월 동안 100권을 6개 언어로 번역해야 하는 상황에서 졸속번역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황지우 선정위원장조차 “한국인의 불가사의한 저력에 의존해보겠다”고 말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번역에 성공하더라도, 국내의 대표적인 작품조차 상당수가 해외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책을 출간해 줄 해외출판사를 찾는 것도 큰 문제다. 우리나라 출판사들이 우리 작가의 작품을 번역해 해외 판권을 개척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2005년 ‘지구촌의 가장 지적인 장’인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이 우리 문화가 세계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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