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여 동안 흘러나오는 클래식을 배경으로 엄격한 형식에 맞춰 움직이는 발레단들 무대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관객들은 발레를 ‘어렵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고급예술’로만 여겨지던 발레가 관객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펼치면서 지난 5년 동안 개최 공연이 약 5배 가량 증가했다. 최근에는 유니버설발레단과 국립발레단이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등 모두에게 친숙한 공연으로 많은 관객을 끌어 모아 발레의 흥행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러한 발레의 부흥은 비단 이들의 노력으로만 이뤄진 게 아니다. 해외 유수 공연의 흥행 한 켠에서 끊임없이 ‘창작의 중요성’을 외치는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바로 민간 발레단이다.


◇민간발레단, ‘우리의 발레’를 설계하다=민간발레단은 말 그대로 민간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단체로 국립발레단과 달리 국가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 통일교의 지원을 받고 있는 대규모 민간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을 제외하면 현재 한국발레협회에 등록된 민간발레단은 20여개 정도다. 이 중 가장 선두에 선 단체는 ‘발레의 대중화’를 꿈꾸는 8명이 모여 1995년에 창립한 ‘서울발레시어터(SBT)’라고 할 수 있다. 서울발레시어터 김인희 단장은 “틀에 박힌 어려운 외국 발레는 그만 따라하고 우리만의 발레를 만들고 싶었다”며 “수익창출이나 효율적 경영을 고려하기 보다는 무작정 창작에 대한 열의만 갖고 창단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창단 첫해 무용수가 롤러스케이트를 타거나 하늘을 나는 등의 파격적 구성을 한 발레 ‘현존’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꾸준히 실험작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적 음악을 차용한 ‘생명의 선’, 여자무용수가 타이즈를 입지 않고 근육의 움직임을 그대로 보여줘 신선한 충격을 준 ‘이너 무부즈’는 창작성을 인정받으며 미국에 수출됐다. 최근엔 인형과 말풍선 장치를 사용해 만화 같은 희극적 요소를 가미한 카툰발레 ‘코펠리아’가 국립발레단과의 협연으로 공연되고 있다.

 이외에도 국내 최초로 발레 상설공연을 시작한 이원국발레단은 ‘2009 합포만 현대음악제’에서 마이클 잭슨을 추모한 ‘아듀 마이클’을 통해 발레와 전자음악의 접목을 선보였다. 김선희 발레단은 마술과 접목해 신비스러움을 더한 발레 ‘인어공주’로 관객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리 발레단 이상민 단장은 “규모가 큰 발레단들이 작품성이 보장된 인지도 높은 해외 공연을 들여오는 안정성을 추구한다면 서울발레시어터를 비롯한 민간발레단은 보다 한국적인 발레, 보다 새로운 발레를 추구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민간발레단은 발레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 자극제가 될 것”이라 평했다.

◇창작욕구 가로막는 현실적 어려움=하지만 이들이 창작 욕구를 맘껏 펼치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 현재 발레계의 지원 규모는 민간발레단을 운영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김인희 단장은 “지난해에는 자금이 부족해 발레단이 존폐의 기로에 섰었다”며 “단원들이 임금의 30~40%를 자진 삭감한 덕에 발레단이 겨우 유지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상민 단장은 “민간 발레단은 공모 선정 등을 통해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것조차 몇몇 단체들을 중심으로 편향적으로 심사되고 있다”며 “이대로 가면 민간발레단이 스스로 설 길은 없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창작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무관심도 극복해야 할 문제다. 영화보다 싼 발레, 소극장에서 해설과 함께 진행하는 발레 등 공연을 알리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인지도가 높은 작품에만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2년간 티켓 판매량이 가장 많았던 작품 12개중 11개가 ‘돈키호테’, ‘호두까기 인형’, ‘신데렐라’ 등 기존에 널리 알려진 작품이나 초대작 공연이라는 점은 이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원국 발레단의 이원국 단장은 “미디어 발달과 정보화 속에서 현장감이 중요한 순수예술은 시장성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면서도 “과연 순수예술이 작품성을 유지하면서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는지 끝까지 시도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민간발레단의 거침없는 창작활동 위한 이정표=민간발레단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각 지역 소규모 문화회관과의 결속력 있는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발레계 전반적인 의견이다. 실제로 서울발레시어터는 2000년 예술의 전당에 입주단체로 선정됐다가 취소돼 10억 빚더미에 오른 사면초가의 상황 속에서 과천시민회관과의 협력을 통해 위기를 타파하기도 했다. 김인희 단장은 “지난 2002년부터 과천시민회관의 사무실과 연습실을 싸게 대관하고 공동기획을 하게 되면서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해졌다”며 “대관비의 절감과 공연장 확충, 홍보력 강화가 민간발레단에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와이즈발레단 홍성욱 예술감독은 “관단체와의 협력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공모 시 심사 과정의 공정성이 먼저 확보돼야 한다”며 “연고를 떠나 작품으로만 심사받을 수 있도록 심사기준과 과정을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관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민간발레단 내부의 적극적 전략도 중요하다. SBT 기획홍보팀 직원은 “극단의 마니아층인 ‘발레뜨망’에게 할인이나 초대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은 시연회를 하거나 연습 장면을 찍는 이벤트를 열어 관객들의 관심을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발레뜨망’은 후원금 지원 외에도 우수한 고정관객이 돼 발레단에 힘이 되고 있다.

열악한 환경의 모퉁이에서 자신들만의 색깔을 구축하려는 민간발레단은 발레 성장의 중요한 동력이다. 발레단과 관(官), 대중 등 발레계 안팎의 노력으로 민간발레단이 창작 열정을 거침없이 쏟아낼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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