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에 맺힌 상(像)과 기억 속 이미지의 혼돈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두 화가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는 그림 대결을 하게 된다. 심사 당일 제욱시스는 새가 날아와 부딪힐 정도로 현실감 있는 포도넝쿨을 그려놓고는 의기양양한 태도로 파라시오스에게 그림을 가린 커튼을 치워보라고 한다.  그러자 파라시오스가 하는 말. “이 커튼이 제 그림입니다.”

이 고대 그리스 신화가 보여주듯 예로부터 인간들은 세상의 현실과 움직임 등을 완벽히 재연하고자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동세감을 표현한 것일 뿐 실제 움직임을 담는 것이 아니었다. 공간을 현실화하려는 노력도 결국은 공간감을 이용한 허상일 뿐이었다. 모든 꿈은 완전히 현실화되지 못하기에 인간은 욕망의 허전함을 느낀다. 채워지지 않는 틈새는 다시 인간으로 하여금 꿈을 꾸게 했으며 그 꿈은 3D라는 새로운 기술을 낳았다.

「NEO SENSE(新감각) : 일루젼에서 3D까지」전은 아날로그적 기술이 표현할 수 없던 수많은 현실을 디지털 기술과 예술이 만나 표현해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다. 오는 17일(수)부터 5월 23일(일)까지 사비나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이 전시에서는 김준, 김창겸, 이이남 등 11명의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움직임의 재현, 시공간의 자유로운 넘나듦을 3D라는 매개체로 구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준의 「cradle song-blue fish」는 상품 브랜드로 문신한 인간의 몸을 3D 이미지로 출력해 자본주의 하에서 상품과 이미지로 획일화된 현대인을 표현해낸다. 푸른 문신으로 뒤덮인 신체의 물결은 자본주의와 인간의 욕망을 비판하고자 하는 작가의 서슬 퍼런 목소리기도 하다.

여동현의 「welcome to paradise」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입체 판화(3D Serigraphy) 작품이다. 입체 판화들은 일반 판화 제작기법과는 다르게 다양한 색을 표현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하나하나의 이미지가 일정한 간격으로 겹쳐지면서 만들어내는 작품의 깊이감은 울퉁불퉁한 판화의 요철을 만지는 듯한 촉각적 환영을 불러일으킨다.

예술가들에게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을 구현하고자 하는 일종의 모순된 꿈은 끊임없는 연구의 대상이었다. 이번 전시는 현실화하는 것이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그들의 꿈을 3D라는 매체를 통해 실현하며 그 상상력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특히 최근 영화 ‘아바타’의 흥행으로 3D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증폭되는 시점에서 현대예술과 3D 기술의 만남은 예술가의 창조적 시각을 보여주는 동시에 시각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예견하게  해준다.

일본의 유명 예술감독이자 그래픽디자이너인 하라겐야는 “뛰어난 소재를 사용하려면 먼저 그 특성을 극한까지 내면화하는 과정을 거친 후에야 진정으로 창조를 위해 소재를 사용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처럼 3D 기술은 자칫 일방향적 이미지의 출력으로 변질될 수도, 매체의존적인 관객을 양산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는 3D를 접목시킨 시각예술이 3D에 종속되지 않고 그 자체로 새로운 예술의 ‘감각’으로 탄생할 가능성의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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