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서평] 인문학 총서『키워드 한국문화』시리즈

김동욱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요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다. 글로벌 기업의 경영자부터 공학, 자연과학 분야의 대가에 이르기까지 인문학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인문학에 대단히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 추세가 이러니 인문학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마저 인문학도 좀 배워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약간의 부담감이 생길 법하다. 그중에는 어쩌면 인문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불편한 기분이 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도대체 인문학이란 무엇이며, 인문학을 안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누군가 이런 질문이라도 던지게 되면 대답하기에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인문학은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등 문화 전반을 포괄할 정도로 그 범위가 넓을 뿐만 아니라, 각 학문 분야는 동서(東西)와 고금(古今)의 기준에 의해 다시 세분되기 때문이다. 외국까지 다루기에는 버겁다는 생각에 질문의 범위를 한국으로 좁혀 보아도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키워드 한국문화』는 이처럼 ‘인문학’의 의미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아무리 보아도 그리다 만 것 같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연구자들은 왜 그리 대단한 그림이라고 감탄하는 것일까?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정조 임금의 비밀편지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키워드 한국문화』는 우리 문화의 정수에 해당하는 한 장의 그림이나 하나의 역사적 순간을 키워드로 삼아 그에 대한 답을 풀어나간다. 이렇게 우리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하는 것은 곧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보다 큰 차원의 의문을 풀어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나온 『키워드 한국문화』 총서 다섯 권 중에서 문예와 관련된 『세한도』와 정치·역사와 관련된 『정조의 비밀편지』를 다루고자 한다.

『세한도-천 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박철상, 고문헌연구가)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그려져 지금까지 전해지게 된 사연을 다뤘다. 요컨대 19세기 조선 문예의 일인자라 할 수 있는 추사를 키워드로 삼은 셈이다. 그리고 추사의 여러 작품 중에서 굳이 <세한도>를 뽑은 이유는 <세한도>를 통해 추사의 인생과 학예를 압축적으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 왕실의 일원으로 남부러울 것 없던 시절을 보내던 추사 김정희. 그러나 55세 때 정쟁에 휩쓸려 극심한 고문을 받은 후 제주도에 유배되고 얼마 후 아내마저 세상을 떠난다. 추사가 복권될 가망이 적어지자 친했던 벗들도 연락을 끊어버려 노년의 추사는 곤궁하고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이상적이라는 역관만은 끝까지 추사를 버리지 않고 도와줬다. 추사는 그에 대한 고마움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아냈다. 이것이 바로 <세한도>이다. ‘세한(歲寒)’이란 『논어』에 나오는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세한연후지송상지후조)’에서 나온 말로,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의미이다.

내용에 빠져 술술 읽다 보면 눈치 채지 못하기 쉬우나, 이 책에서는 추사에 대한 기존 연구에서 놓쳤던 부분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장서인(藏書印)에 대한 꼼꼼한 고찰이 돋보인다. 가령 추사가 유배되었을 때 편지에 봉함인으로 찍은 ‘보평안(報平安-평안함을 알린다)’은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판독되지 않았던 의미 불명의 인장이었다. 이처럼 이 책이 남다른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어려서부터 가학(家學)을 전수받은 덕분이라 생각된다. 학계에서 저자는 감각만으로 ‘이 책은 대략 어느 때 책’이라고 감정할 수 있는 인물로 유명하다. 책 곳곳에 나오는 ‘수경실 소장’은 저자의 개인 서재로, 귀중본이 많아 저자의 독보적인 감식안을 알 수 있다.

『정조의 비밀편지-국왕의 고뇌와 통치의 기술』(안대회,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은 2009년 공개된 정조의 어찰 297통을 통해 정조의 통치 스타일을 살폈다. 정조의 어찰은 모두 심환지라는 신하 한 명에게 보낸 것으로, 원래 정조는 편지에 ‘읽고 나서 찢어버려라’고 썼으나 심환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를 잘 보관해 두었다. 이후 오랜 세월 비전(秘傳)되던 이 편지들을 발굴, 소개한 저자는 1년에 1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정열적인 연구 활동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을 정도로 글 솜씨도 빼어난 학자다.

이 책이 정조의 비밀편지를 키워드로 삼는 이유는 공식적 사료로는 읽어낼 수 없는 정조의 인간적 면모를 생생하게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정조는 세종대왕처럼 조선의 문화적 번영을 이끈 학자 타입의 이상적 성군(聖君)으로 인식돼 있다. 그런데 이 비밀편지에 드러난 정조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남몰래 심환지에게 편지를 내려 ‘내일 내가 이렇게 말하면, 그대는 이러한 이유를 들어 반대해라’고 지시한다. 조선왕조실록의 다음날 기록에는 심환지가 정조의 어명에 그 이유를 들어 반대한 것으로 되어 있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오늘날의 연구자를 포함해) 심환지가 진심으로 정조의 말에 반대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점은 정조가 다른 신하들에게도 비밀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정조는 정치적 입장이 다른 신하들을 막후에서 비밀편지로 조종하면서 정국을 운영해 나갔다. 물론 거짓말도 무수히 한다.

그렇다면 심환지에게는 이 편지들이 ‘정치적 보험’이 아니었을까. 훗날 문제라도 생기면 사실은 이랬다고 주장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심환지가 정조와 정치적 입장이 달랐다는 점에 착안해 정조 독살설의 용의자로 심환지를 지목한 책이 한때 인기를 끌었는데, 비밀편지를 읽어보면 그러한 주장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 수 있다. 이처럼 정조의 비밀편지는 공식 사료에서는 읽을 수 없는 조선 왕조 정치의 은밀한 부분을 다루고 있어 긴장감이 넘친다.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정조의 평소 모습을 기록한 다른 자료를 보아도 정조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가령 정조의 친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을 읽다 보면 정조가 어떠한 정치적 사건에 대해 어떻게 하겠다고 약속하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어머니 혜경궁은 아들 정조의 말을 선뜻 믿지 못한다. 이미 그의 거짓말에 속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키워드 한국문화』는 ‘한국 문화’의 한 조각을 가지고 그 이면에 있는 ‘인간’을 읽어 냈다. <세한도>를 통해 추사를, 비밀편지를 통해 정조를 읽어 낸 것이다. <세한도>와 비밀편지는 추사와 정조를 읽어내기 위한 하나의 징검다리였을 뿐이다. 『키워드 한국문화』 총서는 각 권마다 선택한 시대와 전공분야가 다양하지만, 읽어 낸 바는 ‘인문학’이라는 하나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독자들은 자신의 마음이 끌리는 대로 선택하면 된다.           


세한도 (『키워드 한국문화 1』)
박철상 지음┃문학동네┃252쪽┃1만1천원

정조의 비밀편지 (『키워드 한국문화 2』)
안대회 지음┃문학동네┃164쪽┃8천8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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