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우리는 아무리 가치 있는 것이라도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겐 그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할 때 이 경구를 사용한다. 우리 사회의 가치 있는 것, 즉 진주 목걸이는 한정돼 있지만 그것을 취하려는 사람들은 넘친다. 그래서 진주 목걸이를 취할 사람을 가려낼 자격 기준이 필요하다. 지난 5일 소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로 한국 독자들과 처음 만난 저자 커트 보네거트는 진주 목걸이의 진짜 주인을 찾아나선다.

저자 커트 보네거트는 미군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참전 중 독일군 포로로 잡혀가 2만여 명의 사망자를 낸 ‘드레스 덴 폭격’을 눈앞에서 경험했다. 이후 반전 작가로 활동하게 된 그는 주로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의 실존적 고민 등 무거운 주제를 다뤄왔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가 설정한 극한 상황이란 전쟁이 아닌 ‘비인간적인 자본주의’다. 흥미로운 것은 그 안에서 실존적 고민에 빠진 이들을 전작만큼 어둡게 다루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불신과 절망감이 바탕에 깔렸지만 명랑한 웃음 또한 자아내는 저자의 ‘블랙유머’에 독자들은 유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숭상되는 가치인 ‘부(富)’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대신 돈을 누가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자본주의 사회가 풍요롭게 혹은 황폐하게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누가’, ‘어떻게’의 문제를 더 명확히 드러내고자 저자는 단순한 인물 구도를 사용한다.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음에도 노동자들의 옷을 입고,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는 앨리엇 로즈워터와 “돈은 건조시킨 유토피아라네”라는 신념을 지닌 노먼 무샤리라는 대조적 성격의 두 인물이 소설을 이끄는 중심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저자의 관점에서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사리사욕을 챙기는 데에만 급급한 무샤리는 부의 가치를 얻을 자격이 없는 ‘돼지’다.

그런데 무샤리와 같이 부의 가치를 얻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경제력을 독점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돈만이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폐단이 발생한다. 이런 사회에서 여러 다른 가치들을 제쳐놓고 ‘돈’ 하나만을 향해 달려야 하는 개인은 실존적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돈이 지고의 가치로 떠오르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격차가 커지고 가지지 못한 자는 모두 ‘하찮은 존재’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저자는 소설 속 인물들의 목소리를 빌려 이러한 개인의 고민을 담아낸다. “누가 내 걱정을 하겠어요? 난 멍청하고 늙은 여자에요”, “난 보잘것없는 사람이에요. 하느님이 날 만든 게 큰 실수였죠.”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고 세상의 이기 앞에서 철저하게 작아지는 개인을 경험했을 작가가 써나가는 실존에 대한 고민이기에 이와 유사한 고민을 안은 현대인들에게 더욱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개인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돈’뿐인 그릇된 사회에서 가난한 자들은 ‘자신’과 ‘자신의 삶’의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그들은 때때로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저자가 짚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부조리는 ‘돈이 사회를 지배하는 무소불위의 가치가 되면서 사회 구성원들이 실존적 고민을 겪는다는 것’이다. 1965년도에 출판된 이 책의 물음은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커트 보네거트의 책이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저자의 통찰력이 유독 눈부시게 다가오는 이유가 아닐까.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커트 보네커트 지음┃김한영 옮김┃문학동네┃304쪽┃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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